서점 방문기 ⑨ 인천 미래문고


아이들과 아지트_미래문고

정우신 시인

공터가 아지트인 시절이 있었다. 공터의 잡다한 물건과 함께 뛰어놀던 아이들이 기억난다. 도시에서 공터를 공터로 두는 법이 없다. 도시는 늘 공사중이다. 아이와 어른 모두 아지트가 필요하다. 아지트가 많아지면 어른들은 여유가 생길까? 서점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엉뚱한 생각을 하며 인천의 미래문고로 향했다. 제법 먼 거리에서도 미래문고로 사람들이 모이는 듯했다. 1호선 부개역 근처라는 장소의 이점과 서점 대표님께서 오랫동안 서점의 공간에 공을 들인 노력이 합쳐져서 사람들이 자주 찾는 것 같다.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문구류가 있었다. 문방구 냄새가 어린 시절을 떠올려주었다. 문구가 놓인 자리 뒤에는 그림책과 어린이 도서들이 놓여있고 그 뒤로 다양한 장르의 책이 있다. 서점의 끝까지 걸어가면 책꽂이 뒤에 아담한 공간이 놓여있다. 여기가 이번 행북학교 3기 수업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커다란 강연장과 비교할 수 없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곳이었다. 오히려 작은 모둠끼리 강의하고 이야기하기에 훌륭해 보였다고 할까. 서점 대표님께선 지금까지 서점이 해온 사업의 현수막이나 배너를 버리지 않고 하나하나 간직하여 강의실 주변에 배치했다고 한다. 그동안 이 공간에서 이루어졌을 강의와 수강생들의 목소리라 켜켜이 쌓여있는 듯했다. 아지트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런 공간이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대표님은 행북학교 3기를 하기 전에 했던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에 따른 결과물도 보여주었다. 서점과 지역과 수강생(손님)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 어디나 쉬운 곳은 없고 마음대로 풀리는 일은 없지만 특히 이 책과 관련된 사업이나 행사는 더욱이 쉽지 않은 듯하다. 기본적으로 책이라는 물성이 가지는 성질 때문일까. 책이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을 돌보는 물질이라서 그럴까. 어렵다. 서점 대표님은 책 관련 지원도 줄어드는 기분이고 점점 뭔가 더 해보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하였다.

모니터링은 간 날은 인터뷰가 있던 날이었다. 삼척의 연 책방에서도 느낀 거지만 인터뷰이는 서점에서 하는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이상으로 서점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인터뷰 질문 중 “참여하고 있는 서점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이나 “이러한 프로그램을 접하게 해준 책의 해와 서점에 하고 싶은 말”의 문항이 있었다. 인터뷰이는 단순한 서점에 대한 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서점과 인연이 된 계기부터 지금 자신의 삶에서 서점이란 공간이 얼마나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지까지 말해주었다. 촬영팀과의 소통 문제로 인해 두 번이나 인터뷰를 급작스럽게 진행하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인터뷰이 분들은 평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토대로 인터뷰에 잘 응하여 주었다.

특히 미래문고에서 인터뷰를 한 수강생은 4주차 동시 강의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강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시를 퇴고 하고 있다고 하였다. 수강생의 인생에서 지금의 동시·동화 강의와 창작이 꽤 의미가 깊은 것으로 보였다. 행북학교 3기의 주제인 ‘나의 이야기를 너에게 쓰다’가 생각났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그 독자를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독자의 눈에 비친 자기 자신을 바로보기 위함이 아닐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자식이나 조카가 역으로 자신의 존재를 빚어내는 마음 같은 것.

수업 시작 전에 사인을 받는 시간이 있었다. 수강생들은 사인을 받고 작가와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다. 작가에게 사인을 받는 동안 설레는 마음이 서점에 가득 찼다. 서점을 돌고 있던 설레임은 수강생의 것이기도 하지만 독자에게 느끼는 작가의 것이기도 하다. 책 한 권으로 이렇게 기분이 뭉글뭉글할 수 있을까.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 『엄마 사용법』을 한 권 구매하여 사인을 받았다. 나도 뭔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착각?)을 받았다.

드디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강사는 아동문학의 정의부터 작가가 되는 방법과 절차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작품은 ‘감정을 움직여야’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감정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부터 ‘생활 동화’와 ‘환타지 계열’의 소재와 방식, 이야기에 따라 달라지는 동화와 어린이의 관계 설정 등. 아동문학에 관련하여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 신춘문예와 출판사로의 등단 차이, 아동문학에서의 등단과 등단 이후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까지, 나름 업계의 비밀? 아닌 비밀까지 전부 친절하게 설명하여 주셨다. 수강생들은 금세 진지해지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며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모니터링을 하며 수업을 들으니 이런 아쉬움이 들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강생이 신청을 해놓고 갑자기 여러 명이 빠지면 서로 힘이 빠진다. 그러나 누군가를 탓할 수만도 없다. 각자 사정이 있고 서점에서 수업을 듣는 일보다 우선시 되는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무언가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물론 몇몇은 자본과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주변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의 방식에서 중요한 항목들을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 서점에 가는 일이 은행 업무를 보거나 카페에 가는 것만큼 일상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한편으론 책의 생태계란 원래 이런 것이기 때문에 나름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디스토피아의 자리에서 유토피아가 잘 드러나는 것처럼 말이다.

정우신

시집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가 있다.

미래문고

25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 책방은 동네의 오랜 터줏대감입니다. 서점 상호는 몰라도 ‘버스 정류장에 있는 책방’으로 통합니다. 시작은 책을 좋아하는 지극히 사적인 이유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다양한 분야의 책으로 꼼꼼히 채워 지역 주민이 편하게 책을 읽어 보고 구매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미래문고에는 특히 4050세대 손님이 많습니다. 인생에서 누구보다 활발한 시기이면서 사회에서 든든한 기둥 역할을 맡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노후에 대한 불안과 다양한 경제적 문제를 마주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미래문고에서 지역주민들의 마음속 꿈과 제 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