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림책 – 이태형 소설가
나는 활자로만 된 소설을 쓴다. 추천하는 책도 수업 등의 프로그램에서 텍스트로 다루는 책도 빈틈없이 활자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활자중독이라 볼 수 없다. 오히려 읽는 것을 힘들어하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책장을 넘기다 삽화만 나와도 반갑고 마음이 편해진다. 국문과에 진학하기 전까지 독서는 취미였다. 꼼꼼히 읽지 않았고, 오히려 속독에 가까웠다. 다만 그런 습관은 언어영역 문제를 푸는 데 유리했다. 그래서 더더욱 독서 습관에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독서 습관은 나중에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발목을 잡기도 했다.
난 어린 시절 그림책을 접하진 못했다. 정확하게는 그림책의 존재를 몰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집에는 아이들을 위한 백과사전 전집이 있었다. 탄광촌 시골이었지만 어머니는 나와 누나를 위해 집을 찾아다니던 보따리 장사에게 샀거나 아는 사람을 통해 방문판매로 샀을 것이다. 당시 그 지역에서 극히 드문 일부의 집에만 있는 물건이라 확신한다. 대부분의 가정이 책을 읽지 않고, 사지도 않고, 둘 곳도 없는. 그런 시절이었고, 그런 지역이었다. 어디서 나온 백과사전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삽화가 상당히 많았다.
나에게 백과사전은 일종의 그림책이었다. 그렇게 그림이 동반된 책은 우리가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시절, 알아야 할 상식을 자연스럽게 갖추게 해주었다. 요즘은 어떤가. 인터넷의 발달 이후 백과사전의 자리는 없어졌다. 하지만 자리가 없다는 것은 착각이 아닐까. 인터넷에는 많은 정보가 있지만,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검색해야 한다. 하지만 책은 그 자리에서 우리가 펼치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상식이라는 것은 그렇게 접하는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을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 상식이 부족해지는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은, 본인이 관심 있는 것만 검색하는 지금 상황에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시각에서 그림책을 생각한다. 백과사전, 외국어로 쓰인 화보집, 이야기 사이에 가끔 등장하는 삽화. 그리고 본격적인 그림들로 전개되는 이야기책.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그림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책만 다루는 책방은 신기한 느낌이 든다. 사전 지식이 없어도, 어떤 책을 빼 들어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 분명 책방 중에서도 그림책만을 다루는 곳은 조금 더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장소가 아닐까. 이러한 생각은 책방에 찾아가는 걸음까지 기대하게 해준다.
사전 지식이 없어도, 어떤 책을 빼 들어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이 그림책이다.
남양주라는 지명은 익숙하면서도 멀다. 강원도 본가에 내려왔다가 청량리행 열차를 탄다. 남양주를 지날 때면, 이제 서울에 도착할 때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경기 북서쪽으로 이사 온 이후 남양주는 서울을 통과해야 갈 수 있는 머나먼 곳이 되었다. 다산신도시라는 말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지만, 다산신도시가 남양주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지난 신도시들처럼 시보다 신도시 이름이 더 유명하게 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곰씨네 그림책방’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도농역에서 내려 버스를 탔다. 버스번호가 ‘땡큐11’인 것을 보고, 뭔가 버스 번호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버스 번호가 이상하네’였다. 하지만 도착한 버스를 보고 번호만 특이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마치 유럽 어딘가 도심을 지나는 트롤리버스에 탄 기분이 들었다. 지금부터 그림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일까. 책방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그림책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시청을 중심으로 교통의 편의를 위해 특수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선이고, 단지 외관 때문에 버스 번호가 다른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지금 타고 온 이국적인 버스와는 다르게 넓은 도로 깔끔한 건물들 그야말로 살풍경하다고 할 수 있는 신도시였다. 주소가 표시된 지도를 보면서도 이런 건물에 서점이 있다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3층에 올라가자 병원이 있었고, 복도 끝에 ‘곰씨네 그림책방’이 있었다.
병원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곳에 서점이 있다는 것을 알까. 알고 찾아와도 여기에 서점이 있다고? 라는 생각이 드는 장소. 어떤 의미로는 참 신비한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수업은 10명 꽉 채워 진행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너에게 쓰다’라는 제목처럼, 여기에 글을 쓰러 온 사람뿐 아니라. 이 이야기를 들을 첫 독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사실 저보다 집에서 저희 아이가 더 기대하고 있어요.’
독자가 확실히 정해져 있고, 무엇을 써야 할지 확실하다면. 그렇게 쓴 글은 빛날 수밖에 없다. 진정성은 기술적인 부분을 충분히 가려주기 때문이다. 외동 아이가 기다리는 집, 아들 둘, 딸 둘 또는 남매. 많은 아이들이 엄마 또는 아빠가 써올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글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부모의 삶에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는 평생 부모와 함게 하지만, 우리가 태어나기 전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모른다. 의심해본적 없는 궁금해하지 않았던 그 지점들이 가까워지기를. 그러한 거리를 좁히기 위해 여기에 참여한 모두가 집에서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읽어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길 바란다.
많은 아이들이 엄마 또는 아빠가 써올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글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부모의 삶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태형
소설가.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그랑기뇰』이 있다.
곰씨네그림책방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 있는 그림책 전문서점입니다. 물론 아동, 청소년, 성인들이 볼만한 책들도 있습니다.
책방지기는 ‘어린이철학교육’과 그림책’을 전공하고 연구해왔습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책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엄마들과 함께 ‘그림책으로 철학하기’, ‘새 그림책 톺아보기’ 모임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책과 육아, 사고교육에 관심있으시면 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책도 추천받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