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작업실의 매력에 푹 빠지다
백은하 동화작가
드디어 8주간의 동화창작 강의가 끝이 났다. 처음 갔던 곳은 울산의 ‘다독다독 책방’이다. 서울에서 울산에 갈 땐 KTX를 타고, 울산에서 서울로 올 때는 고속버스를 타며 다녔다.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다행히 수강생들이 무척 열심히 하고, 분위기가 좋아 매주 울산에 가는 4주 동안 힘들다는 생각보다 여행가는 기분으로 행복했다.
그렇게 4주간의 울산 일정을 끝내고, 두 번째 강의는 고양시 ‘너의 작업실’이다. 울산에 비해 비교적 멀지 않았다.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회기역에서 풍산역까지 갈아타지 않고 경의중앙선을 타면 되기에 마음이 편했다.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너의 작업실의 강의는 직장인들까지 생각해 시간을 저녁 7시로 잡았다. 첫날 풍산역에서 내려 커다란 횡단보도를 건너 아파트 길을 따라 걷다가, 골목길로 들어서니 밝은 불빛이 나를 반겨주는 것 같았다. 30분 먼저 도착해 서점을 둘러보았다. 널찍한 두 개의 탁자가 마주보며 몇몇 사람들이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적막하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책을 보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물며 휴대전화 진동 소리, 카톡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소음에 익숙한 삶을 살다가, 최근 들어 이런 조용한 풍경을 처음 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빠질 정도였다. 책은 주제별로 잘 진열되었고, 따뜻하고 깔끔한 인테리어가 인상 깊었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구경하며 김태영 서점대표의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질 수 있었다.
난 강의를 잠시 미루어두고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서점 창가는 마치 새벽 거리처럼 어두컴컴하고, 사람 하나 다니지 않았다. 책에 스며든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백색소음’이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너의 작업실이라는 이름이 무척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서점을 오간 사람들이 쓰는 방명록이 보였다, 오랜만에 나도 볼펜을 들고 손 글씨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그렇게 30여 분이 지나 7시가 되었다. 조용히 앉아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동화창작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서점을 꽉 채워 깜짝 놀랐다. 울산은 프로그램 참여자 모집이 꽤 힘들었다는데, 고양은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모집이 금방 이루어졌단다.
뒤늦게 안 사실인데, 너의 작업실은 일산의 핫플레이스로, 책방에는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들도 오가는 곳이란다. 독서동아리, 그림 그리기, 스터디, 강연 등 지역 예술가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이미 글쓰기 모임이나 책을 통해 소통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첫날, 강의에 관한 취지를 설명했다. 책의 해를 맞이하려 중장년층이 자신들의 자녀 또는 손자 손녀, 조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자신의 삶을 동화로 창작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꽤 호기심을 보였고 하고자 하는 의지도 보였다. 그러나 사실 4주 동안 짧고 굵게 동화창작을 강의한다는 건, 단편 동화 한 편씩 쓰게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에 부담을 안고 시작했다. 어두운 저녁 시간인데도 집중력들이 꽤 좋았다. 직접 창작해야 한다는 말에 몇몇 사람들의 부담감을 느꼈다. 게다가 수업 종료 후 참여 수강생들의 작품을 모아 문집을 만든다고 설명했더니, 부담은 배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첫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
두 번째 강의 때, 부담을 느꼈던 몇몇 분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결과다. 사실 동화창작은 글을 쓰고자 하는 열의가 중요하다. 열의 없이 앉아만 있기엔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고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동화의 단계별을 차근차근 설명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씩 창작을 직접적으로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첫 합평까지 이루어졌다. 부담이 많이 되는 자리인데도 모두 무사히 첫 합평을 잘 끝마치며 과제의 중요성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단체카톡방을 만들어 매주 공지사항 및 과제를 남겼고, 수강생들과 소통했다. 간혹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하는 수강생은 카톡을 통해 미리 전달했다. 특히 직장인이 많다 보니, 오지 못할 상황이 되면 무턱대고 나타나지 않는 게 아니라 정중하게 오는 메시지를 통해 교감하며 지냈다. 그렇게 소통한 결과, 수강생들과의 만남은 짧지만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동화에 매력을 느껴본 사람들은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계속 쓰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그동안 소설이나, 평론 등 다른 분야의 공부를 했다는 사람들, 전혀 관련 없는 전공으로 동화에 관심을 두게 된 사람들. 우리는 그렇게 동화하는 이름으로 똘똘 뭉쳐 완벽하진 않지만, 열정을 갖고 짧은 단편동화 한 편씩을 완성하게 되었다. 창작의 힘든 과정을 이해하며 그렇게 4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4강 때 퇴고의 중요성을 듣고 마지막까지 수정작업을 하겠다고 약속했고, 후속 모임에 대한 중요성까지 이야기했다.
강의를 마치고 풍산역까지 걸어가는 거리는 새벽 거리를 지나는 듯 조용했다. 푹푹 찌는 여름 날씨가 아니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도 있었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 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날도 있었다.
동화창작 프로그램이 인연이 되어 모인 사람들이 가까운 그 단골 서점에서 동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도 창작에 대한 열정을 잊지 말기를 당부한다.
백은하
동화작가.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나 단국대학원에서 문예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게 행복했습니다. 어린이들과 함께 깔깔 웃고, 때로는 훌쩍훌쩍 같이 울면서 마음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지은 책으로 『엄마의 빈자리』, 『우주에서 온 환 탐험대』, 『녀석을 위한 백점 파티』, 『100점 탈출』, 『푸른빛으로 사라진 아이』, 『당당해질 거야』 등이 있으며, 함께 지은 책으로 『나는 열세 살이다』, 『모두가 아픈 도시』 등이 있습니다. 도서관 및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