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BOOK학교 수업후기⑦ – 유하정 시인

말없이 비상하는 오솔길을 보았습니다

유하정 시인

울산은 이십 년 만이었다. 중학교 단짝이 결혼하고 집들이를 할 때 들렀던 기억과 문학상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잠깐 지나친 인연이 끝이었다. 울산 시내를 거쳐 외곽에 위치한 ‘책방다독다독’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두런두런 모여 걷고 있는 오솔길 같은 곳이었다. 책방 대표님은 환경이나 노후 문제 등 사회 활동을 병행하며 활기찬 모습으로 서점을 꾸리고 있었다. 지역 서점은 주변 사람들의 정서적 지지와 언어가 주는 믿음 속에서 어떤 ‘일어남’을 기대하게 한다. 동시를 처음 접한 분들의 눈빛에서 그런 기대와 믿음이 보였다. 내 아이와 동시를 읽으며 상상력을 넓히고 싶은 분, 작가가 되고 싶어 서점의 모든 강의를 섭렵하려는 분, 다른 장르가 궁금한 분들이 모였다.

첫 시간에 갔더니 “동화는 정말 어려워요. 동시는 좀 쉽겠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글쓰기의 영역을 쉽거나 어렵다고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동시를 쓰려면 동시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하고 동시의 말을 알아야 하며 그 말 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겪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단지, 수강생들이 스스로 느끼며 배워가야 할 시간이고 겪어내야 할 과정임을 묵시적으로 공표했다. 첫 시간 주제는 동심의 다양한 ‘경험’에 대한 시적 발화였다. 인공지능이 문학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언뜻 읽으면 인간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각각의 대답은 수긍 가능했지만 ‘나만의 고유하고 하찮은 체험’이라는 대답을 기다렸다. 작품이 갖고 있는 아우라가 워낙 큰 데다가 자신이 어떤 소재와 주제로 글을 써야 하는가에 몰두해 있었기에 광의의 시선으로 작품을 보기에는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작품을 처음부터 쓰는 것보다는 문학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와 언어가 가진 특징, 시가 발화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들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각운을 맞추거나 의성어와 의태어의 배열로 끝나는 동시가 나올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 동시가 갖는 장단점을 넘어 보다 다양한 동시를 알려주고 싶었던 나의 욕심이기도 했다.

언어는 무한한 자생력이 있어서 같은 주제로 동시를 쓰더라도 각기 다른 색이 나온다. 자신이 쓴 시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강생들의 작품과 예시로 가져온 작품들을 감상하며 합평을 거듭한 결과, 매 차시마다 동시에 쏟는 노력도 비례했다. 수강생들은 좋은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반복과 노력이 최선임을 경험하고 있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첫 시간의 이론을 토대로 경험에 대한 본격적 예시 분석과 쓰기로 들어갔다. 무엇보다 시적 형상화의 과정은 일반화된 언어를 감각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필요하고 시적 발상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적 발상은 시적 인식에서 온다. 평상시에 하는 행동과 말, 사물과 대상, 경험과 서사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고 모조리 바꾸어 해석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강의의 소제목처럼 “어쩌면 잘 쓸지 몰라”하고 힘을 주었지만, 세 번째 시간이 되어서야 동시가 동화보다 더 어렵다는 걸 느낀다는 수강생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기꺼이 즐겁다고 했다. 평소에 보던 것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도 동시 생각을 멈추지 않게 되었다는 고백은 내가 몇 시간을 달려 온 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듯 기쁘게 들렸다.

수강생들이 동시 쓰기에 정성을 기울인 만큼 작품의 수준도 나아지는 게 보였다. 그들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했고 그로 인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는 고백도 들었다. 홀로 자식 셋을 키운 수강생은 손수 만드신 차를 가져와 대접하면서 시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동심으로 돌아갔으며 어린 시절의 억압과 결핍에 대한 감정을 쏟아내었고 매번 눈물을 흘리거나 고백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층간 소음에 대한 작품을 제출한 수강생은 육아를 당당히 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탓하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느끼는 책임감이 부담감으로 환치되는 부분을 동시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나는 엄마와 아이가 좀 더 당당하길 바랐다. 내 마음을 전했을 뿐인데 수강했던 몇몇 엄마 수강생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거나 흘렀다.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 작품을 계속 쓴다는 것은 장르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동심에 집중하고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동시를 꾸준히 쓰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으나 쓰는 과정이 치유의 시간이 되는 것도 서로에게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세 번째 시간에는 경험을 리얼리티로 구상한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주제는 환상성이었다. 환상은 ‘서 있는 물’(김금래)을 비롯해 ‘저녁별’(송찬호)외에 열 장 가까운 자료를 제공해 감상하도록 했다. 환상을 접목한 결과 동시는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네 번의 시간까지 빠짐없이 금요일은 비가 내렸다. 폭우를 뚫거나 해가 잠깐 비치는 사이 거침없이 달려 도착했던 책방다독다독과 함께 한 시간은 대표님께서 준비한 꽃다발 같았다. 연보라빛 장미와 이름 모를 보라색 들꽃과 아직 피지 못한 봉오리들은 설렘과 기대를 선사했다. 그 모습은 마치 동시를 쓰려는 엄마를 한없이 기다리는 어린이의 모습 같았다. 엄마와 어린이는 서로를 응원할 줄 알았고 말 없는 비상(飛上) 중이었다. 울산 ‘책방다독다독’이 있어 비상하는 오솔길은 힘을 낼 것이다.

유하정

『어린이와문학』 으로 등단했습니다. 한국안데르센상, 혜암아동문학상 수상, 동시집 『얼룩말 마법사』, 『구름배꼽』, 시그림책 『또또나무』, 『동화책 열두 살의 데이터』(공저), 『여우별이 뜨던 날』, 『슬이는 돌아올거래』(공저)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