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연경책방 스물 한 송이 동시 꽃
김영 시인
2017년 5월 10일 순천만 습지를 걸었다. 5월 햇살을 봄 햇살로 착각했던 탓에 선크림 없이 민소매로 습지 정상까지 올랐다. 서울에 올라오고 얼마 되지 않아 화상 입은 것처럼 피부가 뒤집어졌다. 순천에 대한 기억은 태양을 마다 않고 묵묵히 걷던 길과 벗겨지던 피부로 남아 있었다. 순천에 있는 아주 작은 책방 주인장이라는 ‘연경책방’ 대표님과의 첫 통화는 다정하고 친절했다.
순천 동시 수업이 정해진 날, 기차표 검색과 ‘연경책방’ 소식, 순천의 특산물, 먹거리, 유명 맛집을 검색하느라 노트가 꽉 찼다. ktx는 한 달 전, 아침 7시 이후에 예약이 가능했다. 서울역에서 3번, 용산역에서 1번 여수행 ktx를 탔다. 연두와 초록빛이 만연한 유월 중순부터 칠월 초입의 들판을 바라보며 녹색이 주는 평화를 얻었다.
불면의 아침을 맞이하고 기차 안에서의 숙면을 예상했지만 찬찬히 들어오는 자연의 싱그러움은 잠을 몰아냈다.
6월 15일 월요일 아침, 1차시 동시집이랑 수업 자료가 든 책가방을 메고 서울역을 향해 달렸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서울역에 앉아있는 동안, 연경책방 대표님의 염려의 문자가 쏟아졌다. ‘조심해서 오세요.’, ‘오늘 동시 수업 있는 날입니다.’, ‘지각하지 마세요.’….
곡성역쯤 왔을 때였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시나요? 식사를 같이 해요.’ 벌써부터 배가 불렀다.
소풍 가는 아이처럼 흥분상태로 순천역에 내렸다. 택시가 최적이라는 선임 동화 선생님의 조언을 뒤로하고 순천시청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지 버스 번호를 살펴보았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던 고운 얼굴의 할머니가 두리번거리는 내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 순천시청 간다는 말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붙들고 시청 가는 버스가 몇 번 이냐고 묻기 시작했다.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할머니는 새로 오는 사람들에게도 계속 물었다. 걱정 마시라고 택시 탈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동안 할머니가 탈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앉은 할머니가 내게 손을 흔들었고 나는 양손을 흔들며 인사를 대신했다. 동시 수업을 하기 전에 동시를 주신 친절한 할머니처럼 순천에서 만난 수강생들은 인정 넘치는 아름다운 분들이었다.
1차시는 작가 소개, 자기소개를 은유로 풀어냈다. ‘북교동의 누렁이’, ‘지리산의 찹찹이’, ‘양파’ 등,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로를 조금씩 알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고 좋아했다.
왜 쓰려고 하는가? 최근에 읽은 동시는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동시는? 놀랍게도 아무런 준비가 없는 분들이 모여 있었다. 가져간 동시집에서 몇 편을 골라 읽었다.
‘떡볶이 미사일’, ‘바다로 간 우산’. ‘걱정해결사’ ,‘소낙비’, ‘모래밭’, ‘외할아버지’.
행복한 얼굴로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읽는 모습이 동심 그 자체였다.
4차시에 동시 3편 완성이라니, 동시가 뭔지도 모르고,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쓰지요? 한숨소리가 책방 바닥 아래로 깔렸다. 아동문학 프로그램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참여한 여러분들은 순천의 대표라고 엄지 척으로 용기를 주었다.
마음으로만 품고 있다가 처음 접하게 된 동시 강의는 듣는 것으로 행복한데 작품 쓰기가 감이 오지 않는다는 분들의 질문에 ‘창작의 고통’을 들려주었다. 창작의 고통이 아무리 중한들 실제로 노동하는 분들의 땀방울에 비하겠는가? 즐거운 숙제를 합시다. 힘을 냅시다. 응원 단장처럼 자존감을 향상 시키는 구호처럼 그냥 쓰시면 됩니다. 일단 쓰고 봅시다. 그래야 작품이 됩니다.
2차시에는 필사와 낭송, 소재 찾기 숙제를 내주었다. 두 시간은 20분처럼 빨리 지나갔다. 숙제를 첨삭하고 토론하고 새로운 동시와 동요를 들려주었다. 수강생들은 첨삭을 통해 완성의 기쁨을 공유했다. 숨은 실력자가 있었고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분, 부끄럽다며 몰래 작품을 메일로 보내시는 분, 각자의 역량대로 작품은 완성되었다. 그림까지 더해 동시화로 꾸미는 작업까지는 시간이 부족했다. 갈 길이 멀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훌륭한 숙제를 해 와서 놀라움을 주는 수강생들이 있었다. 덩달아 의기소침해 하시는 분들까지.
4차시 종강 때도 작품을 다듬고 그리는 손길로 바빴다. 그림을 좀 그리는 분이 도움을 주었고 준비물 나눔도 기꺼이 해 주신 분들이 있어서 강의 내내 풍요로웠다.
작별의 시간을 앞두고 쉴 새 없이 아쉽다는 표현을 했다. 이제 동시에 맛을 들였는데 끝이라니 속상하다고 했다.
7인이 쓰고 그려낸 스물일곱 송이 동시 꽃은 순천의 작은 책방이자 갤러리 ‘연경책방 갤러리’에 잠깐 전시 되었다. 세상 감격스런 표정을 곁들여 카메라 불빛도 기록의 한 순간에 동참했다.
순천역에서 집으로 귀향할 때는 목포로 가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황혼이 내리는 이른 저녁의 하늘은 맑았고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적막한 마음은 조금은 쓸쓸했다. 네 번의 순천행은 인문학이 내뿜는 사람살이로 가슴이 벅찼던 시간이었다.
김영
문예지『심상』 신인상,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떡볶이 미사일』로 김장생문학상을, 한국 안데르센상 동시부문과 『유별난 목공 집』으로 5.18 문학상 동화부문을 수상하였습니다. 동시집 『바다로 간 우산』, 『걱정해결사』와 동화 『유별난 목공 집』, 인물이야기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 우리나라 가장 먼저 사제 』를 펴냈습니다. 도서관과 문화센터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을 만나 독서, 역사토론 글쓰기지도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