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BOOK학교 수업후기⑤ – 박혜숙 동화작가

황홀했던 시간 여행을 마치며

박혜숙 동화작가

나에게는 친구가 하나 있다. 한때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친구, 생각하는 것만으로 발그레 미소가 지어지는 친구, 오래오래 옆에 두고 싶은 친구, 그러나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까칠한 친구, 때로는 샘물처럼, 때로는 죽비처럼 날 깨우는 친구. 그런 내 친구를 소개하는 일은 설레면서도 늘 조마조마하다.

이번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열린 <나의 이야기를 너에게 쓰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4주, 단 4회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내 친구의 매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즐거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한양문고 주엽점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문화공간이지 않은가! 오랜 시간 다양한 글쓰기 프로그램이 펼쳐져 왔고 참가자들 내공 또한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던 터라 첫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우려 끝에 도착한 첫 시간, 강의실 안을 채운 여덟 전사의 눈빛에 난 금방 무장해제되어 버렸다. 그들은 낯가림이 심한 날 지극히 환대해 주었다.

첫날 우린 사부작사부작 유년의 뜰을 거닐며 시간의 주름에 묻혀있던 기억들을 소환해 냈다. 빛바랜 사진 같던 추억들이 포르르 날개를 달고 잊고 있는 감각들을 일깨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가에 배시시 미소가 번지고, 눈가가 촉촉해지고, 말이 많아졌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 말하지 않아도, 지금 우리가 왜 이 자리에 와 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너의 추억이 나의 추억을 견인하고, 너의 아픔이 나의 영혼을 쓰다듬고, 너의 삶이 나의 삶과 연결되는 신비한 경험….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직조해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견과 상관없이 시골이라는 낯선 세계에 던져졌던 아이는 신선하고 황홀한 세상을 선물했던 동갑내기 친구와의 이야기를 유려한 문체로 형상화했다. 아픈 엄마 때문에 마음 앓이를 겪었던 순둥이 아이는 개구쟁이 오빠와의 티격태격한 일상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부끄럼이 많던 아이는 그 시절 자신에게 속삭이듯,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펴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올챙이 이야기를 멋지게 형상화했다. 잠깐의 실수로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아이는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한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이야기를 통해 따스함의 가치를 재확인해주었다.
 
‘나의 이야기를 너에게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내 안에 있던 숨은 보석들을 찾는, 보물찾기 같은 설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여덟 전사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 또한 새롭게 바라보았다. 사느라 바빠 잠시 잊고 있었던 나의 오라비, 나의 엄마, 나의 아빠, 나의 친구들……. 웅크리고 찌그러져 있던, 한층 작아져 있던 나를 향해 기꺼이 손을 내밀었던 이들을 기억해 내고, 그들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냈다. 그들은 그렇게 나아갔다.
 
그들이 만난 동화라는 세계가 어땠을지 참 궁금하다. 앞으로 때로는 까칠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요 친구와 어떤 풍경을 그려나갈지 무척 기대된다. 때로는 힘들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아플 수도 있겠지만 요 친구와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참 좋겠다. 그리하여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 환하게 웃으며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극한 환대로, 뜨거운 열정으로 나를 맞이해준 여덟 전사 덕분에 그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얼마나 황홀했는지.
 
김미희, 박기랑, 박지숙, 박지혜, 오현정, 윤성희, 윤준경, 조지현.

동화의 세계에 거침없이 발을 들여놓은, 여덟 전사에게 다시 한번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응원과 찬사를 보낸다. 당신의 이야기들이 세상 밖에 나와 많은 아이의 마음에 가닿기를. 지치고 힘든 그들을 위한 한 줄기 햇살이 되기를.


박혜숙

동화작가, 아동문학평론가. 1964년 서울에서 출생했습니다.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에서 아동문학을 전공하였습니다. 1999년 『아동문예』에 동화 「나무의 전설」로 등단했으며, 2010년 봄에 계간 『아동문학평론』에 평론 「시적 판타지가 구현해 낸 개벽세상」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 동화와 아동문학평론을 쓰고 있습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알았어, 나중에 할게, 『물차 오는 날』,『강아지 초코를 찾습니다』, 말로만 사과쟁이』, 젓가락 도사의 후예』,『그건 장난이 아니라 혐오야!』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