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BOOK학교 수업후기④ – 김은의 동화작가

생각 더하기 행복이 있는 책방

김은의 동화작가

‘생각을담는집’은 이름부터가 남달랐다. 심오했다. 그런데 시골 책방이라니,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다. 경기도 용인을 시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궁금증을 한껏 안고 달려갔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친절하게 푯말이 서 있었다. 논과 밭 너머에 듬성듬성 시골집이 보였다. 300년 묵은 느티나무를 시작으로 울창한 고목 숲이 이어졌다.

고목 숲 끄트머리, 개울 건너에 책방 건물이 있었다. 뒤편으로 돌아가자, 황금빛 보리밭이 어서 오라는 듯 살랑살랑 몸을 흔들었다. 세상에, 여기서 황금빛 보리밭을 보게 될 줄이야, 상상 그 이상이었다. 주변을 둘러봤다.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짙푸른 산이 펼쳐지고, 가까이 보면 고목 주위에 아기자기한 꽃들이 빈틈없이 피었다. 잘 가꿔진 텃밭에는 각종 채소가 풍성했다. 산 밑에는 누구나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놓였다. 어디를 봐도 좋았다. 자연과 문명이 조화를 이루면 이런 모습일까, 나도 모르게 생각이 깊어졌다.

한참 만에 책방 안으로 들어갔다. 대표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책방 구경에 빠졌다. 어떤 책이 놓였나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책의 구성과 배치가 보였다. 문학에서 인문학과 철학과 예술로 이어졌다. 책꽂이 뒤쪽 창가에는 짙푸른 초록을 자랑하는 화분들이 빼곡하게 놓였다. 책과 화분이 절묘하게 잘 어울렸다. 책을 보다 한눈팔면 화분이 보이고, 잠깐 고개를 들면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표님이 물었다.

“오늘 야외 수업하실래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책방 구경을 온 것이 아니라 수업을 하러 온 것이었다. 그것도 네 번의 수업으로 동화 한 편을 완성해야 하는 꽤 난이도 있는 수업이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그 부담마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야외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준비해온 PPT 자료 화면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수업이라 하는 수 없이 한 시간 정도 책방 안에서 강의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야외로 자리를 옮겼다. 비가 와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한 지붕 아래 책상과 의자가 놓였다. 그런데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를 잘해 놓았는지 닦을 필요도 없이 바로 앉아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에어컨 바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었다. 연필이 사각사각 바쁘게 움직였다. 벌 한 마리가 윙윙 참여자 주변을 맴돌았다. 놀랍게도 참여자는 손을 내저어 벌을 쫓지 않았다. 가만히 두면 스스로 날아간다며 의연하게 글을 썼다. 다른 참여자들도 똑같았다. 벌이 날아다니거나 말거나 손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불안했다. 혹시라도 쏘이면 어쩌나, 벌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런데 참여자의 말이 맞았다. 원피스의 꽃무늬 때문이라며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글을 쓰자, 어느 순간 벌이 날아가고 없었다. 대단한 열의였고, 감동이었다.

벌까지 물리치고 쓴 글을 발표했다. 발표를 마치면 모두가 박수로 격려했다. 짧은 순간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는지 발표할 때마다 와, 감탄이 터졌다. 그러나 아직 동화는 아니었다. 솔직한 마음이 담긴 자신만의 짧은 글이었다. 그 글을 어떻게 동화로 살려 나갈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먼저 이야기 속 주인공을 정하고, 그 주인공을 통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주제를 찾아 나갔다. 일단 어찌 됐든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여 완성하는 것을 숙제로 냈다.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일요일 밤부터 숙제가 올라왔다. 나는 글이 올라오는 대로 프린트를 해서 피드백을 준비했다. 그런데 올리고 보니 오타가 있었다고 다시 올리고, 또 올리고 보니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 고쳤다며 다시 올리기를 반복했다. 마감 시간은 월요일 밤 9시인데, 바빠서 다 못 썼다며 다음날 올려도 되냐고 묻기도 했다. 수업 시작 직전까지 글이 올라왔지만 한 명도 빠짐없이 숙제를 냈다. 어려운 관문 하나를 통과한 것 같았다. 정말이지 기적 같았다.

합평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빨리 말을 해도 시간이 부족했다. 깨알같이 메모해서 수정 방향을 제시했다. 주제가 없는 이야기에는 주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 말하고, 시점이 흔들린 글에는 누구의 눈으로 볼 것인가, 어른이 아닌 아이가 주인공임을 강조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는 결말을 말하고, 사건과 갈등이 없는 글에는 사건과 갈등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설명했다. 모두 눈을 반짝이며 초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수정. 글이 점점 나아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힘든 과정을 견뎠다. 세 번의 수정을 거쳐 드디어 완성!

기뻐서 ‘야호!’를 외치는 참여자는 없었다. 뭔지 모르게 아쉽고 부족한 것만 같아 안타까워했다. 당연했다. 글쓰기가, 그것도 동화 쓰기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단련의 과정을 거쳐야 조금씩 조금씩 나아질 뿐이다.

4주 더하기 4주. 8주간의 동화 쓰기 수업은 나를 단련하는 시간이었다. 참여자들의 창작 열기가 나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했다. 힘들었고, 힘들어서 더욱 보람이 컸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매주 임후남 대표님께서 손수 점심을 챙겨주시고, 애써 가꾸신 상추와 고추와 피망과 미나리와 오이 등을 한 보따리씩 싸주셨다. 식구가 적어서 다 먹지 못하고 이웃들과 나눠 먹으며 책방 자랑을 실컷 했다. 어디 가서 그런 호강을 할 수 있을까? 가을에는 꼭 놀러 가리라. 벌써 기다려진다.

김은의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어린이책을 쓰는 작가입니다. 『상상력 천재 기찬이』로 푸른문학상,『놀이의 영웅』으로 송순문학상, 동화 작가들이 모여 만든 ‘날개달린연필’에서 기획한 『명탐정, 세계 기록 유산을 구하라!』 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쓴 책으로는 『비굴이 아니라 굴비옵니다』, 『한 숟가락 역사 동화』, 『길 이름 따라 역사 한 바퀴』 등 다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