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 대한 호기심! 그 속에 시가 산다
박혜선 시인
주변을 둘러보았다. 책방 이웃으로 오른쪽엔 소박하지만 예쁜 공방이 있고 공방 옆에는 음식점이 있다. 왼쪽으로는 옥수수밭이 이웃해 있고 앞으로는 넓은 참깨밭이다. 듬성듬성 새 건물이 보이지만 또 여기저기 공터와 밭이 보이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다. 이 조용한 책방이 매주 목요일 오후 1시가 되면 시끌벅적 깨어난다.
“숙제 하느라 밤을 꼴딱 샜어요.”
“저도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서 끙끙거렸어요.”
“아니 왜 갈수록 어려워지는 걸까요? 시는.”
“시를 쓰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돼요.”
“베란다에 물 주다가 갑자기 시가 생각나서 얼른 썼어요.”
인사처럼 서로의 일주일을 나누는 사이가 된 사람들. 어느 날부터인가 그들이 보낸 일주일 속에 시가 슬금슬금 찾아와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시는 세상에 대한 관심입니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일은 내가 있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며 그 공간을 채우는 모든 것들에 대한 관찰이다.
일곱 분의 수강생들과 함께 시를 쓰고 나누며 그들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 속의 그들을 만났다. 시 속에, 말 속에, 웃음 속에 그들의 과거와 일상이 배어 나왔다.
김천에서 친구 태옥 님과 함께 이곳을 찾은 선아 님. 왼손으로 글을 쓰며 필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집에는 살구나무가 있고 그 살구로 잼을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기를 좋아한다. 빵보다 밤이 더 많은 밤식빵 잘 만드는 빵집의 단골손님이다. 먼저 나서는 것보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 걸 좋아하지만 또 자신의 생각은 진솔하게 잘 풀어낸다. 선아 님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사춘기 아들은 굉장히 발랄하고 재치 있다. 작품 평을 할 때의 목소리는 듣기에 좋고 질근 묶은 머리로 밤새 시와 씨름한다는 선아 님의 모습을 떠올리니 괜히 뭉클해진다. 늘 그 옆에 앉는 태옥 님은 선아 님의 꼬드김에 넘어와 이곳을 왔다고 했지만 시 쓰는 일이 즐거운 듯했다. 특히 태옥 님의 시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숙제 검사를 맡는 아이의 눈빛처럼 긴장감이 돌면서도 순수해 보인다. 남의 시를 말할 때는 조심스럽지만 마음에 드는 시를 만났을 때는 표정이 환해진다. 나는 그런 태옥 님의 얼굴을 보는 게 참 즐겁다. 태옥 님이 곧 시 같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했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표정으로 숨김없이 보여주는 아이들 마음을 그대로 품고 사는 분 같다.
이웃으로 지내며 글을 쓰러 함께 손잡고 왔다는 은주 님과 지은 님. 은주 님의 남편은 떡볶이를 좋아하고 친정엄마는 포도 과수원을 하신다. 나는 은주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칠곡과 멀지 않은 상주에 계신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비가 온다고 바람이 분다고 딸의 안부를 물으면서도 포도밭의 포도가 걱정인 은주 님의 어머니가 상주의 나의 엄마와 닮았다. 은주 님은 조용조용하고 배실배실 잘 웃는다. 자근자근 낮은 말소리지만 시를 열심히 읽어오고 또 남의 시를 읽으며 감탄을 잘한다. 잘 느낀다는 것, 쓰기에도 좋지만 잘 읽어내는 데도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 또 재주를 찾으라면 뭐든 뚝딱뚝딱 잘 만든다는 것, 여기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수업 참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 옷, 스카프, 필통. 이런 모든 것들이 어쩌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 옷? 제가 만들었어요.”
은주 님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자기만의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시도 그렇다. 쓴 사람의 개성이 묻어나는 나만이 쓸 수 있는 그런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지은 님은 자수를 배우러 다닌다. 돌아보면 다 시다, 시는 나에게서 출발한다. 봐라. 내 주변에 시가 천지삐까리라고 열을 올린 내 말을 찰떡처럼 알아듣고 자기의 경험 속에서 시를 찾아내는 아주 밝은 눈을 가진 분이다. 자수를 배우러 다니며 딸과 나눈 말을 시로 옮겨왔는데 놀라웠다.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하는 지은 님. 종일 뭘 쓸까? 뭘 쓰지? 하며 머리를 쥐어뜯다 베란다 식물에게 물을 주면서 옳지, 하며 책방 오기 전에 썼다는 시는 우리를 기절시켰다. 누구는 30년을 시를 쓰면서도 여전히 헤매고 있는데 마음 가는 모든 것들이 다 시가 된다는 그 심오한 진리를 깨닫고 아이들이 하는 말을 주워 시로 만드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다. 남의 시를 볼 때는 솔직하고 보는 방향도 새롭다. 시 쓰기의 최대 장점인 남들과 다르게 보기에도 특화된 사고를 가졌다. 나는 자수 갈 시간에 시에 더 몰입을 하는 게 어떨까? 이 말을 하려다 관두었다. 만화책 보는 김에 위인전도 읽으라는 엄마들의 말처럼 역효과가 날 확률이 높다. 은주 씨는 자유로운 영혼처럼 그냥 지금처럼 하면 되겠다 싶다가도 이 수업이 끝나도 그가 시를 쓰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목소리가 시인 소연 님. 나는 그가 말을 할 때 고개를 들고 그를 빤히 본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시집에 적힌 시로 들린다. 절대 내가 좋아하는 떡을 사 왔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늘 시를 읽고 지내는 목소리다. 물기가 있고 강약이 있고 절제가 담긴 목소리. 그래서일까. 소연 님의 시는 지나고도 자꾸자꾸 떠오른다. ‘외할머니 집 마당에/ 오래 된 대추나무’하는데 그 집 풍경이 스친다. 외할머니와 늙은 대추나무의 모습이 ‘휘청휘청’이라는 시어로 표현한 부분에서는 뵌 적 없는 소연 님의 외할머니를 그 집 마당 대추나무를 그릴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떠오른다. 영림 님은 발랄하다. 유쾌하다. 목소리 또한 나처럼 걸걸하다. 어린 영림이가 같이 있는 것처럼 소재를 골라오는 것도, 그것을 풀어내는 것도 어린이가 살아난다. 보나 마나 주변에 마음을 나눌 친구가 많고 들으나 마나 재미있는 캐릭터일 것이다. 시는 쓰는 사람을 닮는 것처럼 시만 읽어도 영림 님의 마음이 그대로 보인다.
미영 님은 책방 주인장이다. 책방이다 보니 택배가 많이 오고 드나드는 사람이 많다. 나는 ‘그니여비그림책방’의 이름이 끌렸다. 물론 오고 가며 엄마가 계신 상주를 들를 수 있어 더 좋았다. 나는 미영 님에게 그냥 고맙다.
“실은 제가 너무 글이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사업(행북학교)을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신청했어요.”
열정의 책방 주인, 미영 님 덕분에 일 주일에 한 번 씩 엄마와 저녁을 먹는 호사를 누렸다.
호기심이 많은 눈빛은 열정적이다. 네 번의 동시 수업. 사실 난 그들에게 시를 가르치러 간 것이 아니다. 거기, ‘그니여비그램책방’에 모인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기꺼이 네 시간 가까이 되는 그곳을 즐거운 걸음으로 가게 만들었다. 시는 사람에 대한, 자연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일이기도 하다. 궁금증으로 호기심으로 그 속으로 다가가는 동안 알게 되는 것, 보게 되는 것, 느끼게 되는 것, 그래서 마음에 쌓이는 그것을 오늘, 시라고 명명하고 싶다.
박혜선
미루나무를 좋아하고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말 걸기를 좋아합니다. 바다가 검은 기름으로 덮인 날, 신발이 열리는 나무 등의 그림책을 썼습니다. 동시집 『나는 내가 꽤 마음에 들어』, 『쓰레기통 잠들다』, 『바람의 사춘기』, 『백수 삼촌을 부탁해요』, 동화책 『마지막은 나와 함께 짜장면을』,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등을 썼습니다. 한국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열린아동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