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좋아지고 또 좋아졌다
이묘신 시인
낯선 도시에 가서 둘레둘레 길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간판에서 독특하거나 재밌는 이름을 만나는 건 아주 즐겁다. 사람 이름이나 책 이름, 가게 이름에 관심이 많게 된 건 독특한 내 이름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양이 이름 같다느니, 토끼랑 관련이 있느냐, 필명이냐 물으며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번에 행북학교로 인해 삼척 연 책방과 인연이 닿게 되었다. 그런데 왜 이름이 연 책방일까 궁금했다. 연꽃을 좋아하나? 책방지기님 이름에 ‘연’자가 있어서? 이런 생각은 좀 유치하다. 책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곳? 열매가 열린다는 연? 연처럼 높이 올라가라는 연? 이런 생각은 그래도 아까의 생각보다 낫다.
그러다 연 책방에 첫 수업을 가서 알게 되었다. 소녀 같은 책방지기님께 얘기를 듣는 동안 설레고 흥분되었다. 연 책방은 책방지기만 여는 게 아니라, 누구든지 책방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책방이 아니라 오늘은 서영이가 연 책방, 어느 날은 경아가 연 책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개하고 싶은 책이나, 자기 책으로 열어도 된단다. 순간, 연 책방이 참 좋아졌다.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수강생들이 한 명씩 들어왔다. 웃으며 들어서거나,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모습에서 밝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오래 만났던 사람들처럼 경계가 없는 모습에 나도 마음을 놓았다.
가방에서 60년이 넘은 빛바랜 편지를 꺼냈다. 아버지가 군대에서 엄마에게 보낸 편지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수강생 중 한 분이 훌쩍였다.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왜 우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아프시단다. 그 마음 알 것 같아 울컥했다. 작년에 엄마를 잃은 나는
간신히 울음을 참으며 그 편지 이야기를 시작하는 중이었는데….
나는 그 편지를 책 대신 읽으며 자랐고, 그 덕으로 남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며 작가가 될 꿈을 키웠다는 이야기는 아직 꺼내지도 못했는데. 어떡해야 하나 생각하며 슬몃 사람들을 보니 여기저기서 같이 울고 있었다. 책방지기님까지도. 각자 다 사연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어서 눈물을 잠가야 수업을 할 텐데 걱정이었다.
순간, 수업이고 뭐고 같이 있던 사람들이 좋아졌다. 적어도 여기 계시는 분들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시를 쓰겠구나 생각하니 더 좋아졌다.
“전 선생님들이 눈물 많은 게 좋아요.”
처음 만난 분들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매번 만날 때마다 뭉클한 시나 순간을 만나 다 같이 울었고, 책방지기님은 휴지를 앞에 놓아주기에 바빴다.)
그리고 바로 덧붙였다.
“선생님들은 정말 시를 잘 쓰시겠어요.”
그 말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여기 있는 분들은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 보았으니까.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나의 이야기를 너에게 쓰다’에 오신 분들과 시랑 좀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동시를 단번에 시인처럼 잘 쓸 수는 없지만, 동시는 결코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을 가지고 쓴 시들을 들려주었다. 어떻게 이 시가 나왔는지 얘기해주니 역시 공감 능력이 뛰어난 분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도 쓸 수 있겠다는 표정이다. 같이 시를 줍는 연습을 했다. 책방의 책을 훑어보다 줍고, 남의 이야기를 듣다가 줍고, 상상하다 줍고, 수다 떨다가 줍고, 창밖의 풍경을 보다 줍고….
어느 날은 사진을 찍다가 시를 주웠다. 잔뜩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사물을 들여다보다 찰칵, 찍었다. 책 제목을 찍고, 쓰러진 대걸레를 찍고, 강아지를 찍기도 했다. 내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동시를 써보니 이미지가 그려져서 동시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내 마음이 담긴 사진이라 동시 속에도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 더 깊어졌다.
이렇게 동시 수업이 끝났다. 동시에 대해 알만하고, 쓸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끝나서 아쉽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도 동시에 한 발 한 발 다가갈 수 있었고, 동시로 같이 소통할 수 있어 무엇보다 좋았다. 행북학교가 아니었다면 누릴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금 삼척에 가면 책방지기님이 연 책방에 푹 빠질 것이다. 책을 읽다 창밖 풍경을 보면 둘레둘레 시를 주우러 다니는 분들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이묘신
2002년 MBC창작동화대상에 단편 동화 「꽃배」가 당선되었습니다. 2005년 「애벌레 흉터」외 5편으로 푸른문학상 새로운시인상을, 2019년 서덕출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동시집 『책벌레 공부벌레 일벌레』, 『너는 1등 하지 마』, 『안이 궁금했을까 밖이 궁금했을까』, 『마법 걸린 부엉이』, 『눈물 소금』과 청소년시집 『내 짧은 연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림책으로 『쿵쾅! 쿵쾅!』, 『신통방통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아이』, 『어디로 갔을까?』, 동화책으로 『강아지 시험』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