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BOOK학교 수업후기① – 김성진 동화작가

비밀의 책방 미래문고

김성진 동화작가

계단은 세 번 꺾어진다. 부평에 있는 비밀의 책방은 지하 1층에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지하 1층의 미래문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 번의 꺾어진 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무의식을 기묘하게 비틀었는지도 모르겠다.

낯설고 기묘한 것은 우리를 건드린다. 무의식의 밑바닥을 휘저어 무언가를 생각게 하는 그것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른다. 행북학교 4050 책의 해 동화 수업을 위해 처음 당도한 책방 미래문고는 나에게 어떤 방식으론가 낯설고, 기묘했다.

사람이, 때로는 장소가 예술이 된다. 나에게 책방 미래문고는 그런 곳이었다. 예술적 영감을 주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비밀의 공간.

부평이라는 곳은 나에게 오래도록 하나의 도시였다. 그러나 행정구역상 그곳은 인천시 부평구이다. 그래서인지 부평이라는 도시, 아니 구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묘한 방식으로 인지부조화적인 낯섦을 경험하곤 했다. 부평에 도착했으나 내가 아는 그 부평이 아닌 곳에 있는 것 같은 어색함이었다. 부평구 수변로 3번지라는 책방 주소는 나에게 또 하나의 인지부조화를 부여했다. 동화 수업을 위해 책방에 처음 가던 날부터 프로그램을 마치는 날까지 매주 일찍 부평에 도착한 나는 개천 또는 하천을 찾아 주소지를 몇 바퀴나 돌았으나 끝내 그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다, 한때 책방 저 아래의 어딘가를 흐르던 한강의 지류는 오래된 주소만을 남긴 채 콘크리트로 덮여서 땅 속 어딘가를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그 때문인지 나는 매주 금요일 프로그램을 위해 책방 미래문고에 갈 때마다 내가 도달해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곤 했다.

하나의 층을 내려가는데 세 번의 꺾어진 긴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마치 중간에 한 층이 틀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건 공간의 비틀림이자 무의식의 저 밑바닥을 휘청거리게 하는 뒤틀림이다. 마치 낯설고도 기묘한 세계로 들어서는 앨리스의 토끼굴처럼.

이 낯설고도 긴 여정의 끝에 책방에 들어서면 아무리 평범한 공간이라도 평범하게 보일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런데 책방 미래문고는 그 내부 공간조차도 몹시 낯설고 독특하다. 그곳은 작은 서점처럼 보이지만 한편 도서관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실은 수많은 문화 프로그램들이 실행되고 있는 부평의 특별한 문화예술공간이기도 하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앨리스의 토끼 계단은 책방 미래문고의 책장 너머 공간들을 자꾸만 의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강연 중간의 휴식시간에 벽면의 책장에 꽂힌 책들을 훑어보다가 문득문득 책장을 열고 그 너머의 숨겨진 동굴을 탐험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곤 했다. 책방 주인의 시선이 없었다면 나는 진짜 그 책장들을 밀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낯설고도 기묘한 공간에서 나는 강연 참여자들과 함께 20년 전, 30년 전 혹은 40년 전 그 이상의 시간을 거슬러가며 어린 시절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참여자들의 세계를 보았다. 그들은 하나씩 과거의 문을 열고 사람들을 자신들의 세계로 초대했다. 우리는 비밀의 집회를 연 것 같았고 나는 그 기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밀 집회를 매번 즐겼다.

책방지기는 따스하지만 비밀이 가득한 미소로 매번 집회의 장소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마법을 부리듯 모든 참석자들을 매번 강연 의자에 불러 모았다.

2023 행북학교 ‘나의 이야기를 너에게 쓰다’는 자녀나 조카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동화로 쓰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참여자들과 나는 20년 전 혹은 40년 전의 어린 자신이 어른이 된 지금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어쩌면 장소가 가진 마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책방 미래문고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혹 부평에 갈 일이 있다면 책방 미래문고에 꼭 한 번 들러보기를 권한다. 세 번 꺾어지는 앨리스의 토끼 계단을 내려가 혹 운이 좋다면 열린 책장 너머 길게 이어진 낯설고도 기묘한 앨리스의 토끼굴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책방지기의 미소가 온화한 등불처럼 당신을 인도해줄 터이니.

김성진

어린이청소년문학작가. 동화 『엄마 사용법』, 그림책 『사자와 소년』, 청소년소설 『초콜릿벌 초코비』를 썼습니다. 제1회 KB창작동화공모전 최우수상(2010), 한국안데르센상 대상(2010),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공모전 대상(2012) 등의 수상 경력이 있으며 『엄마 사용법』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