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BOOK학교 수업후기⑩ – 김리라 동화작가

내 안에 있는 어린이를 발견하게 해주는 책방

김리라 동화작가

1. 마침표는 중요하지 않다
 
2023년 4050 책의 해 <작가와 함께 하는 행BOOK학교>가 6월 19일에 남양주 곰씨네 그림책방에서 열렸다. 나는 행BOOK학교에서 강사를 맡아 주 1회 수업을 진행했고, 4회 수업을 마치느라 4주의 시간을 보냈다. 수업에 참여한 4050 참여자들은 단편동화 12편을 써냈다. 그래서 수업하는 동안 주로 동화 쓰기에 주력했는데 글쓰기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 위주로 진행했다. 1강에서는 기억에 남는 어린 시절과 특별했던 기억을 이야기 하고 나서 줄거리 쓰기, 제목, 등장인물( 이름, 나이, 성격)을 쓰게 했다.
 
나는 단편동화보다는 장편동화를 많이 썼고 출간 된 책들도 모두 장편동화다. 그래서인지 참여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단편동화를 쉽고 재미있게 쓰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서 2004년에 월간 <어린이 문학>에 실렸던 나의 작품을 복사해서 참여자들에게 나눠주고는 낭독하라 했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쓴 동화이고 처음 쓴 단편 동화였다.
참여자들이 쓰는 동화도 어린 시절의 특별한 기억을 더듬어 동화로 풀어내려는 시도였으니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잡지에 실린 작품인데 마침표가 몇 군데 실종되고 없었다. 나도 동화를 처음 썼을 때에는 마침표를 제대로 찍지도 못했구나! 하고 깨닫자 처음에는 놀라움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쓰다니! 하고 나도 모르게 외쳤다. 동화를 처음 혹은 깊이 배우고 싶은 참여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수정할 때에는 마침표가 빠지면 안 된다며 꼭 찍으라고 했다. 글쓰기의 표본이 되어줄 작품이 되었으니 훌륭할 수밖에.
 
2. 글쓰기는 쉽지 않다
 
책을 15권이나 출간한 나로서도 지금도 글쓰기가 어렵다.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할 때 마침표나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의 시제에 신경을 쓰다 보면 이야기가 술술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쓰고 풀어나갈 것인지에 주력하라고 매번 강조했다.
1강에서 참여자들이 쓴 줄거리는 수업이 끝나면 집에서 검토했다. 수정할 부분이나 좀 더 풀어야 할 부분을 체크해서 답 메일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참여자들과 나는 수업 시간뿐만이 아니라 수업을 마치면 더욱 분주했다. 최종 작품이 될 때까지 메일이 네댓 차례나 오갔다. 나는 내 작품을 쓸 때보다 더 바빴고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자들의 동화 쓰기의 열기는 날로 뜨거웠고 내게도 영향을 주었다. 나도 처음에는 열심히 썼는데……. 미친 사람 같다는 말도 들었는데…….

참여자들의 글쓰기는 본인의 글쓰기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주위 사람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글쓰기를 미뤄왔었다. 더는 쓸게 없는 것 같았고 겨우 마음을 다잡고 의자에 앉더라도 해야 할 일이 새치기를 하며 끼어들었다.
 
3. 캐릭터와 상징성
 
2강에서는 캐릭터 만들기에 대한 수업을 진행했다.
참여자들의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래서 내가 쓴 장편 동화<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에 등장하는 태국 할아버지의 캐릭터를 소개했다.

동화 <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는 태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를 둔 다문화 가정 아이가 태국인 할아버지를 처음 만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런데 태국 할아버지의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한국 사람도 아닌 태국 사람인데…….
손자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떠올리다 보면 친근한 가족이나 친척의 이미지와 행동이나 말투가 떠오른다.
내 작품에서 등장하는 외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홍삼 맛 나는 사탕을 주는데 손자는 맛이 없다고 투덜댄다. 사탕을 주는 외할아버지의 얼굴엔 기쁨이 넘치지만 손자는 홍삼 냄새가 달갑지 않다. 이 장면은 친정아버지를 떠올리며 썼다.
태국 할아버지의 이미지와 무에타이를 알려달라는 손자에게 엉뚱하게도 태권도를 알려달라는 장면은 시아버지를 떠올리며 썼다. 그리고 나의 상상력도 조금 보탰다.

현실에 있는 내가 잘 아는 캐릭터와 상상력을 조합한다면 선명한 캐릭터가 완성된다. 작품은 삶의 전부를 보여주기보다는 일부를 보여준다. 캐릭터는 짧고 선명한 이미지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는 장담할 순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방식일 뿐이다. 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동안 현실에서 마주한 인물들이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과 글쓰기의 필요한 부분은 상상력을 불어넣어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인물들은 나를 쓸쓸하게도 만들고 웃음 짓게도 한다.

동화 『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에서는 빨간 고추젤리가 등장한다. 겉은 매워 보여도 꿀처럼 달콤한 맛이 나는 젤리다. 태국 할아버지가 손자를 염두에 두고 만든 젤리다. 빨간 고추 젤리는 상징성을 띤다.
 
 
4. 밋밋하지 않은 글쓰기로 의미 찾기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건 쉬워도 막상 글로 풀기는 어렵다. 그래서인지 참여자들은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있는 그대로를 쓰려니까 너무 밋밋하다고 했다. 나는 무조건 시작하고 무조건 쓰고 끝내라고 아주 무식한 방식으로 밀어부쳤다. 그러고 나서 비어있거나 밋밋한 부분은 사건을 확장, 증폭시키는 방법으로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참여자들은 부지런히 썼고 절반은 3강에서 나머지는 4강에서 자신이 쓴 작품을 낭독했다. 자신의 이야기라서 그런 걸까. 낭독하면서도 울컥하시는 분도 있었다.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로 몸만 어른이 된 게 아닐까.
 
<작가와 함께 하는 행BOOK학교> 수업을 마치며 소감도 들어보았다.
어른이 되면 몸도 마음도 함께 커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자신을 과감하게 꺼낼 수 있는 시간이어서 의미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아이에게 읽어줄 동화를 쓰게 되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또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글로 풀면서 그때의 외로운 아이를 지금이라도 다독이며 잘했다고 칭찬해 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있다.
지금도 내 안에 어린이가 있다.
내 안에 어린이는 웃고 있을까 시무룩할까 겁먹은 얼굴일까.
내 안에 어린이도 활짝 웃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과거 자신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곰씨네 그림책방은 내 안에 있는 어린이를 발견하게 해주는 책방이다.

김리라

장편동화 『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로 제 4회 웅진주니어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쓴 책으로 『우리는 걱정 친구야』, 『너랑 절대로 친구 안 해!』, 『안 돼, 낯선 사람이야!』, 『나토비가 나타났다』, 『이상한 생일 초대』, 『공부 잘하게 해 주는 빵』, 『돌봄의 제왕, 플라톤 아저씨네 이데아 분식점』, 『나는 엄마를 기다려요』, 『선생님 관찰 일기』, 『황금 새 구출 작전, 소희가 온다!』, 『로봇 형 로봇 동생』, 『조선 신분, 그것이 알고 싶다』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