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책방과 마술가게_연경책방
이태형 소설가
순천 방문은 두 번째다. 두 번의 방문 모두 날씨가 좋았다. 여전히 순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적었다. 여순사건이 일어났던 곳. 그리고 여자만(汝自灣)을 끼고 있는 곳. 두 번 다 행BOOK학교의 일로 서점 일정에 따라 방문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관광할 여유가 없을 때 방문한 것이 크다. 행BOOK학교 모니터링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KTX의 힘이다. KTX가 다닌다면 하루에 볼일을 보고 올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여유가 없어진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작년과 재작년 제주에 방문할 때는 어쩔 수 없이 1박 2일로 일정을 잡아야 했다. 제주가 웬만한 지역보다 빨리 갈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비행기 수속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며, 밤늦은 시간 비행기도 없어서 모니터링을 마치고 급하게 제주로 돌아와 비행기 탑승수속을 밟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예 당일에 다녀올 생각을 포기하면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추가적인 일을 고민하게 된다. 물론 재작년에는 아침에 일어나 급하게 바로 올라왔지만 말이다. 한 시간을 둘러본다 해도 마음의 여유라는 것은 시간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오후 1시 37분에 순천에 도착해서 3시 57분 차를 타고 올라오는 일정에서 여유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날씨가 좋았기 때문일까. 서점까지 걸어가기로 결심했다. 걸어서 30분 거리 딱히 걸어가기에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더웠다. 날씨가 좋다는 것은 눈은 행복했지만, 몸은 힘들었다. 하지만 순천동천을 건너기 위해 풍덕교 위를 지날 때. 걷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 지역을 느끼는 첫 걸음은 그곳의 공기를 마시는 것일 테니깐.
연경인문문화예술연구소. 서점 대표인 석연경 시인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문화공간이었다. 강의공간과 전시공간 사이에 아주 작은 연경책방이 있었다. 신간이나 유행하는 책보다 대표님의 개인 콜렉션이 전시된 것 같은 책방이었다. 대중성보다 작품의 수준을 고려한 책들. 과연 요즘 시대에 이런 책을 찾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일부 이제는 구할 수도 없는 책들이 빛바래 서가에서 늙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대부분 절판되었다. 다시 찍을 생각이 없는, 이제는 다시 구하기 어려워진 책들을 보며 슬픈 감정이 든다. 20년 전 대학생일 때 문학이 예술이냐는 질문을 들으면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학은 예술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도태된 장르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품위 때문일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연경책방과 같은 모습. 서점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동네책방들은 선택해야 했다. 참고서만 팔면서 문학서적은 주문으로만 구입할 수 있거나. 인문학 전문 서점의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거나. 아주 적은 인원으로 알차게 진행하는 이러한 프로그램은 항상 수혜자가 몇이냐는 고민을 동반한다.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대중강의가 사진으로 보기에는 더 성공한 행사일 수 있으나, 분명 한 명 한 명이 얻어가는 문학적 깊이는 소수인원이 모여 진솔하게 다가가는 것이 더 깊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강의공간과 전시공간 사이에 아주 작은 연경책방이 있었다.
내가 찾아간 날에는 동화 수업의 마지막 날이었다. 참여자가 모두 동화 한 편씩 완성했고, 자신이 쓴 동화를 낭독했다. 그중 한 분은 마치 전문 동화구연가처럼 멋지게 낭독하여 인상 깊었다. 한 분이 너무 저렇게 잘하시면 다른 분들이 움츠러 들지나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이미 몇주간 함께 해왔기 때문인지. 낭독이 끝난 뒤 모두 진심으로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잘한 것을 잘했다고 진심으로 칭찬할 수 있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을 어느덧 잊고 있었던 게 아닌가 반성이 들기도 했다.
동화와 동시를 쓴다는 것.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려한다는 지점에서 이미 시기와 질투에서 벗어나 함께라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타인을 위해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모든 문학작품은 이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가까운 미래세대를 위해 내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그 어떤 다른 장르보다도 진정성 있는 글을 쓰는 작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점을 나오며 뒤를 돌아본다. 연경책방이라 써진 현판이 보인다. 알고 찾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이러한 공간이 이 골목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순천시청과 CGV 사이의 골목에 있지만 지나는 사람이 드물어 한적하지만 여름 햇살만은 강하게 내리쬐는 곳. 그곳에 마치 허버트 조지 웰스의 단편소설 「마술 가게」와 같은 책방이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숨겨진 공간에 모여 어디서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간다.
다시 돌아보았을 때. 이 장소가 사라질까 두려워 돌아보지 않고 발길을 옮긴다. 순천역에 가는 것도 왔을 때처럼 걸어가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온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생각이다.
이태형
소설가.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그랑기뇰』이 있다.
연경책방
연경책방은 문학평론가 석연경 시인이 운영하는 작은 서점입니다. 위치는 순천시청 바로 옆이며 연경인문문화예술연구소 건물 1층에 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작은 서점인듯 하지만 책방에서는 성황리에 저명 문인과 인문학자의 북토크가 열립니다. 시집과 인문학 관련 책이 주를 이루며 작은 갤러리가 있어 시화나 그림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