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방문기 ⑦ 고양 너의작업실


휴(休)와 식(植)_너의작업실

김건영 시인

쉴 휴(休)자를 생각하면 항상 책이 떠오른다.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서 책을 읽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째서 사람이 나무에 기대는 일을 옛사람들이 쉬는 것으로 상형(象形)하였는지 알 것이다. 책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구체화한다. 그리고 나무의 몸을 통해 세상으로 나온다. 그런 책들은 다시 책장에 담기는데, 그 책장은 보통 나무 책장이 많다. 단지 튼튼하고 가공이 쉬운 재료라서 나무로 된 책장을 선호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에서 나온 것들이 다시 나무에게로 간다. 그리고 사람은 그 곁에 기대서 쉰다. 우리가 책장 사이를 돌아다닐 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쉼[休]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 순간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서점을 방문하는 일은 그래서 일이 아니게 된다. 발걸음은 기꺼워지며 설렌다. 책과 나무의 냄새는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그 긴장은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허리를 곧추서게 만든다. 일산의 서점 ‘너의작업실’에 찾아가는 길이 그러했다. 잘 정비된 계획도시의 구획을 따라 널찍이 팔 벌린 건물들 사이에 여름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푸르고 풍성한 화분들 사이에서 잘 말린 목재들이 빛을 내는 서점에 들어섰다. 아이들 몇과 어머님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고요함이 서점 공간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그 조용함은 사람을 밀어내고 격리시키는 조용함이 아니었다. 나무가, 풀이 자라는 걸 보고 있노라면 형용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러한 종류의 고요함일 것으로 생각하며 서가를 거닐었다. 차분한 사장님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서점의 운영은 잘 되는지, 주로 어떤 손님들이 오시며 지원 사업 문제 같은 것들도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접해 주신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단숨에 마시고 진열된 책들을 살폈다. 신기하게도 대화를 나눈 것보다 더 서점 사장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은 코너에 눈을 뗄 수 없는 일러스트 전시 공간이 있었다. 창가에 하늘하늘한 식물들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무 책장들과 함께 나무 테이블들이 있었다. ‘너의작업실’이라는 이름답게 조용히 작업을 하러 오시는 손님이 많다는 사장님의 귀띔이 생각났다. 저도 가까웠으면 자주 왔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사장님은 조용히 웃으셨다.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 고요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서점 구경을 적당히 마칠 때쯤에 유하정 작가님과 수강생분들이 들어오셨다. 이전 수업들이 어땠는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런 일을 몇 번 거치다 보니 앞선 수업이 어땠었는지 대략 추측할 수 있는 사례들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절대적인 판단 기준은 아니다. 창작 관련 수업은 여러 명이 수업을 들으면서 수강생 개인의 작품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수강생들의 친밀도가 다른 일반적 수업과 무척 다르다. 자신의 생각이 녹아든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조언을 듣는 작업을 하게 되면 확실히 서로의 마음에 더 다가선 기분이 들 것이다. 그래서 수업 자체의 생명력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결속력이 느껴지는 것이다. 무엇이든 나누고 싶은 기분이 드는지, 수강생분들은 작은 것들을 나누기 위해 손에 들고 온다. 자신의 작품을 깊이 읽어주는 것에 대한 감사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근처를 서성거리다 예쁘게 포장된 작은 간식 꾸러미를 받았다. 저도 받아도 되나요? 부족하지 않을까요? 라고 물었더니 수강생분께서 넉넉히 챙겨 왔다며 웃으셨다. 작은 풍요는 쉼[休]을 불러온다. 그늘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을 적시는 것처럼.

속속들이 다른 수강생분들이 수업 시간에 맞추어 들어오셨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프린트해 온 수강생들이 작품을 나누며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강생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무척 인상 깊었다. 이 수업을 듣고 나서부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아요. 일상적이고 작은 것들도 열심히 관찰하고, 다르게 생각해 보게 돼요. 그 말들이 너무 좋아서 나도 주제넘게 참견할 수밖에 없었다. 수강생분들 말씀을 들어보니 이전 수업이 무척 좋았다는 걸 알겠네요. 말하고 나서는 민망했다. 굳이 말할 필요 없었는데. 하지만 기쁜 것은 기쁜 것이다.

문학은 작은 것들을 유심히 살필 수 있는 힘과 기회를 준다. 옥타비오 파스의 유명한 문장을 떠올린다. ‘시는 앎이고 구원이며 힘이고 포기이다. 시의 기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시적 행위는 본래 혁명적인 것이지만 정신의 수련으로서 내면적 해방의 방법이기도 하다.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시는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다.’ 문학은 손쉬운 깨달음이나 삶의 진리를 발견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길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나무 그늘에 앉으면 순식간에 더위가 가시고 피로가 풀리는 게 아니다. 먼 길을 가다가 잠시 멈추는 일이다. 독서는 사실 삶을 멈추고 망설이게 한다. 책을 읽으면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심히 보지 않던 작은 사건들이 보이게 되면서 망설이게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그늘에 앉아 나아길 길을 보게 만드는 나무들에 더욱 기대야 한다.

행북학교 프로그램이 더 확대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드는 순간이다. 수강생들의 수업 참여도와 서점의 만족도들 살펴보면서 더더욱 그러한 마음이 커진다. 확대를 기대할 수는 없으니 이 사업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우리가 찾아갈 그늘들이 많아질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예민하기만 하고 여유를 부릴 수 없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유는 여유가 있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지속되는 노동을 위해 휴식이 필요하듯이 삶의 전반의 방향을 위해서는 사유를 위한 멈춤이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독서가 아름답지는 않다. 세상에는 좋은 책보다 좋지 않은 책이 더 많다. 누구에게는 꿈같은 공간이 다른 누구에게는 무의미한 공간인 경우가 많다. 분쟁은 어디에나 있다. 이견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멈추기도 하면서 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지 않는 사람들이 두렵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혹은 재테크 서적이나, 자기계발서만을 읽는 사람들이 두렵다. 아니, 사실 그런 사람들만이 가득한 세계가 올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이 두렵다. 그래서 더더욱 서점과 좋은 작가들, 좋은 독자들을 기꺼워하는 것이다.

김건영

2016 월간 현대시 하반기 신인문학상 당선. 시집 『파이』. 공저 『2016 문예지 신인상 당선 시집』, 고양이 시집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

너의작업실

 너의작업실은 2020년 4월 문을 열고 삶과 예술, 책이 스며든 일상 속의 연대를 꿈꾸며 지역 예술가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서점입니다. 다양한 문화예술기획을 시도하고 노력한 결과, 독립서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문화예술 활동의 장소로서 지역의 일상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책을 통해 지적·정서적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독서, 글쓰기, 그림 그리기, 스터디, 강연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간을 찾은 이들이 서로 교류하고 지역 내 작가들이 직접 모임을 운영할 수 있도록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