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방문기 ④ 동해 서호책방


모카포트와 주민의 공간_서호책방

이태형 소설가

카페인 중독이라, 커피를 가리지 않고 먹는다. 특히 지방에 가야 할 때는 더 그렇다. 전날 잠들기 전에 모카포트를 끓인다. 자기 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3샷으로 마시고, 남은 3샷은 아침을 위해 남겨둔다. 일어나 나갈 준비를 끝내고 남겨둔 커피를 원샷한다. 먼길을 떠나는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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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로 가기 위한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한다. KTX가 다니게 되면서 동해시는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물론 운행 편수가 많지 않아 필요한 시간에 가서 원하는 시간에 돌아오는 것은 어렵지만, 먼 옛날 중앙선을 타고 수 시간 걸려야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큰 변화이며 다행이다. 예전 같았으면 전날 와서 숙박을 해야 했으리라. 동해시는 강원도에서 인구가 4번째로 많은 도시이지만, 9만이 안 된다. 올해 행BOOK학교를 진행하는 다른 지역 중 유일한 ‘군’인 칠곡 인구가 11만이 넘는 것을 생각해보면 차이가 좀 느껴질까. 인구가 적기 때문이겠지만, 독서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서 단언컨대 불모지라 부를 수 있다.

서점은 동해시 북평동에 자리 잡고 있다. 북평이란 북쪽의 평야라는 의미인데, 동해시 최남단에 위치한 동네가 왜 북쪽 평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이는 북평이라는 지명이 동해시보다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서점 근처에 위치한 북평고등학교는 1946년에 개교하여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영동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학교이기도 하다.

서호책방에 방문하는 날 묵호에서 내리는 실수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사람들이 모두 내리는 것을 보고 종점인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내린 것이 실수였다. 역사에 묵호라 써진 것을 보고 급히 다시 타려 하였으나 이미 늦은 참이었다. 지금은 묵호와 북평이 함께 동해시가 되었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북평은 삼척군이었고, 묵호는 지금은 없어진 행정구역인 명주군이었다. 그 이전에는 강릉군이기도 했으니, 현대에 와서 행정구역이 빈번하게 변한 동네이기도 하다.

택시를 잡아 북평으로 가달라하니, 기사님이 웃으며 동해역에서 내리셔야지 잘못 내리셨냐고 되묻는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이 묵호에서 많이 내리다 보니 나처럼 잘못 내리는 사람이 적지 않은가보다 생각하면서, 이 질문은 그저 해프닝이지만, 어떤 거리감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서호책방은 이제는 화물용으로만 쓰는 것처럼 보이는 철길을 옆에 두고 아파트 단지 끝에 자리 잡고 있다. 동네사람이 아니라면 지나칠 일 없는 장소였다. 하지만 그러한 특성 때문에 입구에서 나와 왼쪽으로 능선을 보며 탁 트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강릉을 제외한 영동지방에 이러한 동네 문화공간은 없었다. 서점이란 아이들이 참고서를 사는 곳이었을 뿐이다. 책방 대표님은 만약 이런 공간이 동해에 이미 있었다면, 본인이 책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의 이용객이 되었을 것이라 말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목마른 사람이 마른 땅에서 우물을 판 격이다. 서호책방의 이름은 두 아이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서점 이름의 작명부터 올해 행BOOK학교의 방향인 나의 아이에게 내 삶을 다룬 동화 동시를 쓴다는 목적인 ‘나의 이야기를 너에게 쓰다’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서점 대표님도 함께 앉아 적극적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야말로 책방지기면서 이용객 같은 모습이었다. 참가한 사람도 가지각색이다. 4050이지만 벌써 아이가 있을까 싶은 비교적 젊어 보이는 분들부터 상당히 나이가 있어 보이는 분까지. 그리고 남자분도 한 분 있어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되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강릉을 제외한 영동지방에 이러한 동네 문화공간은 없었다.

문화행사를 진행하는 전국의 모든 책방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이렇게 작은 도시에서 연속성을 가지고 주 1회 작가를 통한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가장 먼저 강사비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교통비와 하루를 꼬박 잡아먹는 일정까지 생각하면, 다회차 수업은 엄두를 내기는커녕 생각조차 어렵다. 지자체에서 문화사업에 더 관심을 두고 지원해 주면 좋겠지만, 투자 대비 이용객은 적기 마련이고 타지역에서 작가를 불러온다는 것에 대한 호불호. 더구나 딱히 성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니, 큰 관심도 없고 관심이 있더라도 당위성이 부족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의 서점을 방문해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특히 어느 순간부터 문학 프로그램이란 문화사업보다는 지원사업으로 인식되는 부분이 더 크다. 물론 이러한 인식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업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시선의 방향성에 대해 항상 고민할 수 밖에 없다.

행BOOK학교 역시 많은 서점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덧 3년 차가 되다 보니 전국의 서점들에게 존재는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게 자리 잡은 듯하다. 또한 100%가 될 수는 없겠지만, 참여한 서점들이 상당수 행BOOK학교의 프로그램과 운영 시스템에 긍정적인 후기를 들려주시는 듯하여 힘이 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선정 이후 소통도 잘 안되고, 문제가 발생하는 곳이 매년 한 곳 정도 발생한다. 그럴 때면 서호책방처럼 이러한 사업 하나하나가 너무나 절실하고 소중한 서점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열에 여덟아홉은 서호책방처럼 대관비 지원을 받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해서 서점 이용객들에게 더 나아가 이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서점에 방문하기 전 검색을 해본다. 커피를 판매하지 않는 곳이라면 미리 커피를 사서 간다.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라면 서점에서 구입하려 한다. 그러면 죄송하게도 돈을 받지 않는 경우도 가끔 있다. 가장 곤란할 때는 전철역 또는 터미널에서 서점에 가는 동안 카페를 발견하지 못했을 경우이다. 이런 경우 도착한 서점에서 커피를 내려주는 경우 너무나 감사한 기분이 든다.

서호책방은 3년간 행BOOK학교 서점들을 다니는 동안 두 번째로 맛있는 커피를 맛본 곳이다.(가장 맛있는 커피를 맛본 서점은 커피를 판매하는 곳은 아니었다.) 한 사람당 모카포트 하나. 낯설기도 하고 기호성에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는 모카포트는 이 작은 도시에서 낯선 서점의 모습만큼 새로운 감각을 주민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어느덧 책을 본다는 행위 또한 아날로그하면서도 오히려 낯선 행위가 된 것은 아닐까. 책방과 카페의 경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 책방과 이용객들이 바라보는 방향에 따른 차이가 아닐까.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서호책방의 커피를 오랫동안 기억했으면 좋겠다. 다른 장소에서 모카포트를 보고 카페가 아닌 책방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 서호책방의 커피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이태형

소설가.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그랑기뇰』이 있다.

서호책방

2019년에 문을 연 서호책방은 생활권에 속해 있어 관광객보다는 주민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서점과 카페를 겸하고 있으며 현재는 독서 모임이 진행 중입니다.
글쓰기, 북토크 등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