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방문기 ③ 울산 책방 다독다독


서가(書架)를 따라 걷는 기쁨_책방 다독다독

김건영 시인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가 벌써 3기까지 진행되고 있다. 처음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참여하여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강의를 진행한 기억이 떠오른다. 작년에는 프로그램의 파견 작가로 활동한 경험도 있어서 이 프로그램이 서점과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무척 높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올해 서점을 탐방할 기회가 와서 무척 두근거렸다. 해마다 독서 인구가 줄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독자가 작가와 함께 글을 읽고 쓰는 프로그램에 목말라 있다는 것 또한 절실히 체감하게 된다. 부디 이 프로그램이 아주 오래 지속되고 확장되기를 바란다.

이번에 방문한 책방은 울산에 위치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도 꽤 먼 도시인 데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척 기대하며 여행길에 올랐다. 공업과 산업이 발달한 도시라는 사실 외에는 거의 아는 게 없었다. 도시의 풍경을 들여다보면서 책방을 찾아가는 길에 신선한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여느 다른 도시와 비슷한 풍경들이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으면서도 다른 것들이 있었다. 너른 태화강의 풍경이 있었고, 대나무 숲이 보였다. 대나무를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수목한계선이라는 것이 있었지. 서점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되뇌었다. 서울에서 대나무를 거의 볼 수 없는 것처럼, 지방과 수도권의 문화 격차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었지. 최근에는 지구온난화 탓인지 수목한계선이 상승하여 수도권에서도 대나무가 자생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변화는 무조건 좋기만 한 경우도 없고 나쁘기만 한 경우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대나무처럼 푸름을 사계절 내보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단풍이 깊게 드는 나무들 역시 사랑스럽다.

책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기 때문에 서점을 사랑하게 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점은 대나무숲처럼 푸르게 오래 그곳에 있어야 한다. 그 사이에서 독자들은 피고 지며 책을 오래 사랑한다. 좋은 독자 중에서 좋은 작가가 탄생한다. 다시 서점에 사람이 모인다. 이러한 순환이 우리 독서 생태계를 풍요롭게 한다. 그래서 좋은 서점을 찾아가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조용한 주택가들이 펼쳐져 있는 언덕 위편에 파스텔 색조의 외관이 눈에 띄었다.

책방 다독다독은 산자락의 고즈넉한 자리의 골목에 자리 잡은 서점이었다. 백양사라는 절 근처에 조용한 주택가들이 펼쳐져 있는 언덕 위편에 파스텔 색조의 외관이 눈에 띄었다. 작은 노란색 어린이용 의자가 앞에 나와 있었고, 어린이용 장화와 화분이 서점 앞에 놓여 있었다.

서점에 들어서자 책방 사장님의 독서 취향을 느낄 수 있는 서가가 눈에 띄었다. 수업 시작을 기다리면서 천천히 서가를 눈에 담으며 서점 사장님께서 추천하는 책들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이 작가는 나도 참 좋아하는 작가인데, 사장님께서도 좋아하시나 보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대화도 길게 나누지 않았지만 깊은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저절로 호감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집에 초대를 받았을 때나 서점을 방문할 때는 책들을 유심히 살피게 된다. 읽은 책을 자랑하거나 독서의 경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경험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모여 숲을 이루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러한 서가를 서성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한 번 훑어보고는 이내 뒤로 돌아 다시 역순으로 살펴본다. 사고 싶은 책이 있어도 바로 사지 않는다. 서너 번쯤 찬찬히 들여다본 후에야 비로소 내가 마음에 들어 했던 책을 고른다. 그렇게 고른 책은 미야모토 테루의 산문집이었다. 무척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집이 올해 4월에 출판된 것을 모르고 있다가 이 책방에 와서 알게 되었다. 서점은 단순히 내가 원하는 책을 골라서 구매하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내가 원하지만 아직 알지 못하는 책을 발견하는 곳이다.

즐겁게 서점 구경을 하며 기다리는 동안, 천천히 수강생들과 강의하실 강사분께서 들어오셨다. 수강생들과 나누기 위한 작은 선물과 음식을 가져오는 분이 있었다. 마침 책방 다독다독이 6주년이라고 해서 케이크를 가져온 수강생도 있었다. 수업에 앞서 지난 시간의 수업 질의응답을 하던 도중 잠시 책방 다독다독의 6주년 축하 파티가 열렸다. 잠시 불을 끄고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불었다. 곧이어 아이 손을 붙잡고 다른 수강생분이 오셨다. 아이는 의젓하게 어머니 옆에 앉아 같이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이런 광경을 직접 볼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열정적인 수강생들과 강사, 그리고 다정한 책방 사장님이 있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지역 서점은 특히 문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 같다.

지역 서점은 특히 문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 같다. 넌지시 책방 사장님께 주로 어떤 분들이 오시는지 물었다. 6년이나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운영하면서 좋았던 점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장님께서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아이들이 직접 만든 동화책을 보여주셨다. 서점에서 만난 수강생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며 만든 사진첩도 보여주셨다. 만듦새도 훌륭했고, 이 책방이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금세 알 수 있었다. 지역에서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문화 사업 거점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사장님의 마인드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의 말씀을 옮겨 보자면 이렇다. ‘저는 그냥 수익보다는 여기서 이 일을 하는 게 좋아서 해요. 그래서 커피도 팔지 않고 그냥 오시는 손님들께 대접한다는 생각으로 기회가 있으면 좋은 커피를 대접하려고 해요.’ 책방 다독다독이 오래 이렇게 사랑받고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듯하다.

다정한 수강생들과 멋진 사장님, 그리고 열정적인 강사님이 모인 자리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동화 이론에 관한 이야기부터, 수강생들이 직접 써온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사실 이런 수업의 기획을 맡은 경우 직접 현장에 찾아가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 특히 지역 안배를 통해서 선정된 장소는 더욱 그렇다. 서면으로 받아 볼 수 있는 결과 보고와 사진, 출석부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기회에 직접 와서 본 광경이 계획과 섭외, 그리고 서류들에 둘러싸였던 과거의 노력을 보상해 준다는 사실에 더욱 감동했다.

강사를 맡으신 백은하 동화 작가께서 수업 시간 중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지난주에 질의응답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곤란했어요. 그래서 오늘은 돌아가는 차표를 늦게 끊었어요.’ 나는 사랑이, 배려가 작은 희생과 노력 같은 것들을 기반으로 자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앉아서 깊이 숙고하며 책을 읽는 행동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앞으로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서가 앞을 여러 번 거닐 것이다. 그런 것들이 모이면 언젠가는 더 울창한 숲이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김건영

2016 월간 현대시 하반기 신인문학상 당선. 시집 『파이』. 공저 『2016 문예지 신인상 당선 시집』, 고양이 시집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

책방 다독다독

책이 마음을 잇는 곳, 책방다독다독입니다. 동네 사랑방 책방다독다독은 매일 진행되는 다채로운 독서모임을 통해 지역독서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책이 마음을 잇고, 그 마음들이 지역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어 오늘도 책방다독다독은 지역 문화의 발전소로서 동네를 밝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