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방문기 ② 한양문고 주엽점


미래의 아이_한양문고 – 정우신 시인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 3기’가 진행 중인 한양문고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역 근처에 있다. 한양문고에는 카페도 있고 갤러리도 있고 무엇보다 책이 많다. 세미나실도 여러 개 있다. 한양문고에 들어서는 순간 몇몇 강의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사람들이 붐볐다. 서점이 호황을 누리던 한 시절이 생각났다. 서점이 약속 장소였던 시기, 서점에서 책을 골라 선물을 주고받던 시기, 월간지, 만화책, 베스트셀러 등을 기다리며 서점 앞을 지나던 때가 떠올랐다. 그 물질성은 어디로 휘발됐을까. 그 책들은 지금 어느 책장에 꽂혀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까.

하나의 장소를 중심으로 구성된 사람들은 장소가 폐쇄되면 대부분 흩어진다. 사람들은 또 다른 장소에 이르렀을 때 기존의 장소를 새롭게 인식한다. 내가 지나왔던 서점들이 떠올랐다가 움푹 꺼진다. 서점이 사라진 자리엔 언어가 남아있다. 언어는 시간과 공간을 소환하고 감정을 발생시킨다. 언어는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에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숨을 쉬고 있다. 이번 행BOOK학교 3기의 강의 제목인 ‘나의 이야기를 너에게 쓰다’도 언어로 이루어진 집을 구축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식이나 조카에게 언어의 집을 물려주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언어로 만들어진 집에서는 ‘나’의 유년 시절도 ‘내’가 생각했던 ‘너’의 모습도 영원히 존재한다. 글을 완성하기도 전에 첫 독자이자 영원한 독자가 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한양문고를 방문했던 날은 동시 수업이 있었다. 수강생들은 설레는 눈빛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나’의 어떤 이야기가 언어가 될까. 어떤 형식으로 나올까. ‘나’의 글을 읽을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이가 어떤 말을 ‘나’에게 들려줄까. 등의 궁금과 기대가 포함된 듯 하였다. 아름다웠다. 한동안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자연스러워진 시대에 오랜만에 현장성을 느낄 수 있었다. 오프라인 수업의 장점이 여기 그대로 있었다. 서로의 말과 호흡, 표정, 부스럭거리는 종이 소리, 종이 위에 연필이 서걱이는 소리, 얼마간의 침묵 등 현장의 분위기로 인해 생성되는 감정들이 강의실에 가득 찼다.

수업은 박시우 어린이의 「옆집 아이」라는 동요 댄스 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유튜브에서 한 번씩 찾아보시기를 권한다) 동시는 다음과 같다. “나보다 키도 크고 나보다 품새도 높고/ 나보다 노래도 잘하고 나보다 축구도 잘하고/ 나보다 공부도 잘하는 옆집 아이가 있어요/ 옆집 아이를 잘 아는 엄마 나는 키 작은 해바라기/ 조심조심 엄마를 봐요 내가 엄마 아들인데/ 우리 엄마 관심 차지하는 옆집 아이가 있어요” 라는 동시이다. 엄마의 관심이 자신에게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내용의 동시이다.

이 동시가 동요가 되고 거기에 아이의 율동까지 접목되니 대체할 수 없는 하나의 작품으로 보였다. 동시가 가지고 있는 진정성에 동요의 리듬감이 합쳐지고 그것이 다시 아이의 육성과 몸짓으로 발화되었을 때 빛이 배로 발현되었다. 사실 좋은 작품은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영상을 틀자마자 수강생들은 환호했다. 동시를 경유하여 불쑥 찾아온 감정이 ‘나’의 동심을 흔들었다. 동시는 어떻게 올까.
우리 문학사에 남은 시인 중에는 윤동주, 백석, 정지용 등 모두 좋은 동시를 썼다. 동시를 쓰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그 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를 지었던 선생님들의 감정을 비슷하게 느껴보고 싶어 나도 몇 번 동시를 연습해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아이를 보여줄 마음에 서둘러 창작을 했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내가 쓴 동시는 어른의 것도 아이의 것도 아닌 듯했다. 아이와 어른이 그렇듯 언어와 세계가 불일치했다. 세계가 작으면 목소리가 크고 목소리가 크면 세계가 작았다. 언어에 서로 맞지 않은 옷을 입히니 우스워졌다. 동시를 지을 때는 이미 아이의 세계 속에 내가 들어가 있어야 했다. 아니 이미 아이의 세계를 살고 있어야 한다. 사실 그게 뭔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 동시에 다가가려 할수록 멀어졌다.

여담이지만 가끔 아이가 하는 말에서 동시적인 것의 경험을 한다. 한번은 아이가 공원에서 풀잎을 만지다가 사마귀에 물렸는데 손을 털지 않고 계속 울면서 서 있었다. 왜 사마귀를 놓지 않고 있냐고 물었는데 아이는 사마귀가 원래 어디 있었는지 몰라서 가만히 있다고 하였다. 다른 한 번은 아이가 스티커를 가지고 놀다가 “아빠 마음에 스티커 붙여 줄까”라고 할 때 “마음은 안에 있는데 어떻게 붙일 수 있어?”라고 되물었더니 티셔츠 안에 손을 넣은 채 “이렇게 안에 붙이면 돼요”라고 대답했던 대화에서 동심을 느꼈다. 동시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일 것이다.

이어지는 수업은 소재 찾기 시간이었다. 숙제를 통해 다양한 소재를 엿볼 수 있었다. ‘비밀상자’, ‘거미’, ‘사마귀가 알집에서 백 개 이상 실처럼 막 나오는 것을 지켜본 일’ 등 다양한 소재가 소개되었다. 강사는 ‘되도록 다른 사람이 많이 쓰는 것을 피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것들을 이야기 할’수 있는 소재가 좋다고 알려주었다. 수강생들은 각자의 노트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창작을 시작하였다. 서로의 소재나 필사한 내용을 낭독하며 수업의 열기가 한층 더 뜨거워졌다. 한양문고에 투명한 언어의 집이 생성되고 있었다. 어떤 작품들이 탄생할까. 한 수강생이 동시를 낭독하다가 울먹인다. 미래의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귀는 끝까지 열려 있대요.
아빠한테 하는 말
다 듣고 가신대요.
 
“아빠…… 말 안 들어서……
……미안해요……
어제…… 백 점 받았는데……
아빠…… 사랑해요.
…… 아빠…… 사랑해요.”

 ―김미혜, 「마지막 말」
 

정우신

시집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가 있다.

한양문고 주엽점

한양문고 주엽점은 최초 마두역에서 1997년 문을 연 이후, 주엽동으로 장소를 옮겨 12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지역 서점이다. 2017년부터 꾸준한 리모델링을 통해 여러 강의실 및 전시공간을 만들었고, 현재 다양한 인문예술 강좌, 서점에서 즐기는 하우스 콘서트, 지역 주민들의 그림 전시 등을 진행하여 지역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점이라는 사업적 공간의 특성 외에도 지역의 다양한 문화 예술단체, 출판사, 작가들이 상주함으로써, 다양한 협업 및 교류가 가능한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