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도심산책 –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 2기(시 쓰기 반 | 김건영 시인)


‘도심산책’을 여행하기 – 김건영 시인

작가와 함께하는 행북학교 2기 후기 | 시 쓰기 반 | 서점 도심산책 | 강사 : 김건영 시인

독서와 여행의 공통점을 나열해 보자면 많겠지만, 피로와 함께 오는 아쉬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좋은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때 즈음 얼마 남지 않은 페이지를 쓰다듬는 마음과 인상적인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배어 나오는 아쉬운 감정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피로함 역시 당시의 순간에 집중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나른함과 함께 감각적인 충만함이 동시에 찾아온다. 이러한 작업은 일상 속의 ‘나’의 족쇄를 헐겁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나는 이러한 작업이 바로 이타성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물질로서의 ‘책’ 중에서도 특히 문학작품은 특히 더욱 이타성을 자극한다. ‘나’라는 존재를 벗어나 소설 속의 주인공이나 시적 화자의 상태에 공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문학은 그래서 언어의 기술을 익히는 기능 외에도 날이 서 있는 타자들의 세계를 이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많은 피해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타자성과 관련된 문제가 바로 커뮤니티의 단절과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사람들이 고립을 겪으면서 더더욱 날카로워지고 그러다 보니 더욱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기술의 발달로 소통의 편의성은 늘었지만, 실제적으로는 불통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써서 게시글을 올릴 수 있고 댓글을 달 수 있다. 전파만 있으면 화면을 통해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줄어든 것은 침묵하고, 찬찬히 읽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그들의 표정을 읽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한동안 문학 관련 수업이나 행사가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취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 온라인으로 하는 수업은 편리했지만 무언가 답답하기도 했다. 디지털 신호가 변환된 화면과 목소리는 또렷하고 선명했지만, 무언가 미진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것은 전자책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때때로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당시의 공기, 빛, 소리, 냄새 같은 것들도 거기에 함께 있었다. 다른 감각들이 함께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서 사람의 표정과 말투에 가닿은 빛이 어떻게 표정과 섞이는지 또한 중요했던 것이다. 울리는 목소리가 녹아드는 공기에 또 얼마나 습기가 있는지, 온도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만남이라는 것은 새로운 정보를 너무 많이 받아들여야 해서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지만 내가 뭘 잘 모른다는 사실만을 깨닫게 되는 상황에서 강사라는 직책은 매번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생각한다. 첫 강의에 대한 부담감은 아무리 겪어봐도 전혀 익숙해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남양주의 도심역 근처에 있는 서점 ‘도심산책’에 들어섰을 때 이러한 상념들은 순식간에 달아났다.

남양주의 도심역 근처에 있는 서점 ‘도심산책’에 들어섰을 때 이러한 상념들은 순식간에 달아났다. 부드럽게 코를 찌르는 질 좋은 나무 책장의 향과 새 책 냄새가 났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어서 그 또한 기분을 설레게 했다. 전화와 문자로만 연락을 했고 실제로는 처음 뵙는 사장님도 전부터 알던 분처럼 편안했다. 월요일은 서점 휴무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정 조율을 하면서 선뜻 강사인 나의 일정에 맞춰 조율해 주셨다.

20대부터 30대를 대상으로 수업을 한다는 것도 부담감이 컸다.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기는 했지만 다른 나이대보다 나이대에 따라 생활양식이나 생각이 무척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예상대로 수강생들과 마주하니 대학생과 갓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람부터, 몇 번의 이직을 겪은 직장인에, 아이를 낳고 육아 휴직 중인 사람도 있었다. 첫 시간에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제가 여러분들 수업 끝날 때쯤 모두 친하게 만들 거예요’라고 장담했지만. 이제 와 고백하자면 자신 없었다. 그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코로나 시국 이후 새로운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줄어 있었다. 그리고 위계질서 문화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사실도 문제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표정들이 아홉 번의 수업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 것 같다.

언젠가 생애 처음으로 강의를 맡게 되어 고등학교 선생님이자 시인인 친구에게 좋은 강의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질문을 들은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좋은 강의에 제일 필요한 건 좋은 수강생이죠’라고 했다. 대답을 듣고 당시에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몇 차례 강의를 해보고 나니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었다. 아무리 강의 준비를 열심히 하더라도 영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올 때도 있었다. 반대로 내가 준비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보인 수업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수업은 내 모자란 실력에 비해 과분한 ‘좋은 강의’가 되었다. 수강생들이 눈을 빛내며 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같이 시를 읽으며 낭독 솜씨가 점점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수강생들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해석을 발견해 이야기해 줄 때도 있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좋은 시를 읽고 이런 부분이 좋았다고 말하는 일이 늘었다. 그럴수록 수강생들도 작품을 쓰는 실력이 늘었다. 수업 시간에 자주 웃을 수 있었고, 자신의 상처에 연관된 이야기에 눈물짓기도 했다. 그 모든 표정들이 아홉 번의 수업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 것 같다. 강의 하러 가서 위로 받고 온 날들이었다.

어느 수강생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호두과자를 사 오며 말했다. 오늘 월급날이라서 사 왔어요. 지방 출장이 있던 수강생은 굳이 지방에서 선물 받은 멜론을 깎아 수강생들과 나눠 먹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수업을 왔다. 작품을 낭독하는 중간중간 그 향긋한 냄새들이 서점에서 오래 맴돌았다. 마지막 즈음에 미니 백일장을 진행했는데, 익명으로 작품을 살펴보았지만 이제 서로 그게 누가 쓴 작품인지 다들 금세 눈치챘다. 어느 수강생은 몇 시쯤에 직장을 마치고 도착하더라 라는 것도 다들 알게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도 서점 앞에 서서 잠깐씩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았다. 지나가는 말로 ‘거봐요. 제가 첫 시간에 그랬죠? 여러분들 다 친해지게 만들 거라구요’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역량이 발휘된 부분보다는 수강생들이 서로 다정하게 그러한 시간을 직접 만들어 낸 부분이 크다. 서점 사장님께서 섬세하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 지원사업 담당자들이 고생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작품을 쓰는 시인, 소설가들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같이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이 모임이 앞으로도 간간이 이어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수업이 끝나더라도 읽고 쓰는 시간을 계속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때 만약 나를 불러준다면 기꺼이 달려오겠다고 말했다.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여행과 독서는 피곤하지만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김건영

2016 월간 현대시 하반기 신인문학상 당선. 시집 『파이』. 공저 『2016 문예지 신인상 당선 시집』, 고양이 시집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

도심산책(경기 남양주)

산책하듯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는 책읽기가 일상에 스며들도록, 남양주 어느 작은 동네 모퉁이에 스며들듯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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