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함덕32 –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 2기(소설 쓰기 반 | 차영민 소설가)


우리 사이 – 차영민

작가와 함께하는 행북학교 2기 후기 | 소설 쓰기 반 | 서점 함덕32 | 강사 : 차영민 소설가

너와 나 사이에는 많은 순간이 존재한다. 함덕32와 만남도 그랬다. 가장 먼저 제주의 서쪽에 사는 나로선 동쪽은 그저 머나먼 곳으로 다가왔다. 과연 다가갈 수 있을까, 물리적 거리감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내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와 비슷한 삶의 속도를 달리는 청년들과 만나 소설을 쓴다는 것. 어떤 불편함과 걱정들이 기다리고 있어도 사양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물론 그조차도 어떠한 사람들과 만날지 살짝 스며드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지만.

7월의 첫 번째 수요일 저녁 7시에 처음 만난 수강생들은 마치 함덕 바다와도 닮아 있었다. 함덕 바다는 언뜻 보면 평범한 파란빛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제법 다양한 색감을 품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도 있고 어떤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런 함덕 해수욕장 근처에 자리 잡은 <함덕32>에서 만난 사람들이 딱 그러했다. 대학생, 직장인, 배우, 해설사, 화가, 자영업자. 각자 하는 일 자체도 달랐지만 나이대와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도 제각각이었다. 책상을 동그랗게 배치해서 서로가 서로를 살펴봤을 땐 어떤 마음이었을까. 과연 우리가 함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 먼저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번 글은 함덕32 소설창작 수업에서 만난 순간들을 짧게 짧게 정리하면서 우리 사이의 변화들을 살펴보려 한다. 매번 새로운 이 공간에서 만날 때마다 점점 가까워질 수 있을까, 라는 작은 질문과 함께.

 매번 새로운 이 공간에서 만날 때마다 점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첫 시간, 우리는 각자 자신을 소개했다. 나이, 사는 동네, 하는 일, 소설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까지. 분명 충분한 소개들이 나왔지만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알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소설의 기본적인 개념인 ‘사실, 허구, 진실’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사실로 믿어왔던 경험과 지식들이 허구에 가깝다는 걸 발견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어쩌면 사실, 허구, 진실 앞에서는 똑같은 모습이 아닐까, 라는 작은 질문이 남게 되었다.

두 번째 만남, 첫 시간에 주어진 숙제인 “내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포기해도 되는 것들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로 주제가 깊어졌는데, 이때는 다른 듯 닮아 있는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일상에서 느낀 한계와 결핍에 대해 살펴보았고 이와 닮아있는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나눠 읽으며 우리 삶에서 놓친 게 무엇인지 돌아보았다.

세 번째 만남, 나를 중심으로 어떤 단어들이 채워질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해봤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과연 있을까, 의문이었지만 주어진 80개의 칸을 단어로 꽉 채울 만큼 할 이야기가 많다는 걸 서로가 서로에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무심코 썼던 문장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가장 당연하다고 생각한 단어에서 발견된 선명한 오류,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놓쳤던 중요한 가치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또 하나의 공통 질문을 품에 안게 되었다.

네 번째 만남, 누구에게나 여행의 기억이 있다. 또 하나, 방황했던 순간들도 있다. 여행과 방황,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삶은 언제나 여행과 방황이 반복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살펴보면서, 문장으로 풀어보는 연습도 진행했다. 단어 하나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한계가 우리가 살아온 진짜 삶의 무게는 아닐지 또 다른 새로운 질문이 남게 되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어쩌면 사실, 허구, 진실 앞에서는 똑같은 모습이 아닐까.

다섯 번째 만남, 누구나 한 번쯤은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는 글쓰기. 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간체 소설의 개념을 알고 실제로 함께 나눠 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각자 가지고 있는 편지의 상대방에 대한 기억이 생생했다. 모든 글쓰기는 나와 상대방이 있고, 정해진 상대가 있다면 목소리가 명확하다는 것. 이미 삶의 경험에서 체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 하나, 글쓰기에서 놓쳤던 감각에 대해 탱탱볼을 통해 살펴보기도 했다. 눈으로 색깔도 보고 냄새도 맡고 손으로 질감도 느끼고 직접 던져서 움직임도 관찰하게 되었는데. 탱탱볼은 아이들이 잠시 놀다가 어딘가 방치되어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 장난감이라 여기기 쉽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 삶과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여섯 번째 만남, 문장과 문장 사이에 들어가야 할 중요한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뼈대만 남은 이야기에 인물, 배경, 원인, 결과를 붙이면서 매일 치르는 일상과 공통점을 발견했다. 소설은 아주 멀리 있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는 지금 이 순간의 기록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곱 번째 만남. 영화나 소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았다. 우리 삶에 빗대서 한 문장으로 담아낼 수 있는 각자의 기억들을 하나씩 짚었다. 사람과 시간, 공간 거기서 이어지는 사건과 결과를 한 문장으로 꽉꽉 채워서 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문장씩 쓰면서 그동안 중요한 기억들을 명확하게 담아내는데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사람이란 점,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에는 자신을 돌아봤다면, 이제는 주변과 세상의 사람들에 관심을 가져보는 시도를 해보았다.

여덟 번째 만남, 각자 앞으로 쓸 소설의 구성안을 챙겨왔다. 분명 그동안에 배웠던 것로 정리해보았지만 실제 본문으로 이어질지 막연했던 부분들이 많았다. 함께 구성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당장 펼쳐내지 않으면 안 될, 높은 가치를 지는 작품이란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구성안에서 이제 첫 문장으로 한 걸음을 크게 내딛는 순간이 되었다.

우리 사이는 소설보다 더 소설처럼 가까워지고 영원히 잊히지 않을 추억으로 기록되길 바란다.

이제 마지막 아홉 번째 만남을 며칠 앞두고 있다. 각자 진짜 쓰고 싶었던 자신만의 소설을 완성해서 만나게 될 것이다. 첫 시간부터 매주 한 번씩 만날 때마다 다양한 주제와 방법으로 소통을 해왔다. 수업이란 이름으로 불렸지만 책상을 빙 둘러앉아서 그동안 쌓아뒀던 나만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고 있었다. 젊은 날의 기억, 가장 가치 있었던 것에 대한 마음, 두 눈으로 담아냈던 세상의 모습까지. 각기 다른 일상을 치르고 모이지만 이미 마음은 하나로 모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삶을 뛰어넘어 한 공간에서 만나 진솔한 소통으로 이어지고 글 한 편 쓰는 이 시간. 우리 사이는 소설보다 더 소설처럼 가까워지고 영원히 잊히지 않을 추억으로 기록되길 바란다. 한여름 밤의 함덕32에서 소설로 가까워진 우리 사이, 앞으로 더 오래 기억되길 작은 소망을 이 글로 남겨본다.

차영민

“문학적 고향인 제주에서 세상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삶이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삶 그 자체 라고 믿는 제주 감성 충만한 젊은소설가”
출간 저서 : 『그 녀석의 몽타주』, 『소년,달리다』, 『두번 벼락 맞은 사나이』, 『변호인』, 『7인의 에세이』,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

함덕32

제주시 조천읍 함덕에 소재한 ‘문화예술연구소 함덕32’의 협력 서점으로 인문, 예술과 연계된 출판, 판매, 기획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