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보틀북스 – 작가와 함께하는 행BOOK학교 2기(시 쓰기 반 | 오은경 시인)


한마음 한뜻으로 – 오은경

작가와 함께하는 행북학교 2기 후기 | 시 쓰기 반 | 서점 보틀북스 | 강사 : 오은경 시인

오래전부터 진주에 가보고 싶었다. 상상 속 진주는 강이 넓은 곳이 아니었다.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금강의 존재도 몰랐고 논개가 뛰어내렸다고 널리 알려진 촉석루 또한 진주성 안에 있는 누각인 것을 몰랐다. 어렴풋하게나마 사당祠堂을 떠올렸다. 언젠가 방문한 적 있던 절과 궁궐의 이미지 어디쯤 촉석루가 있었다. 논개가 왜적을 안고 뛰어내렸다는 사실에 근거해 나는 절벽을 연상했다. 진주, 촉석루를 떠올리면 가파른 절벽과 사당이 동시에 생각났다.

꼭 논개와 관련된 촉석루의 역사 때문에 진주에 가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진주라는 도시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진주는 김언희 시인과 김이듬 시인의 고향이고 살아왔던(혹은 사는) 곳으로, 시집에서 진주와 관련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두 시인의 시에서 진주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두 시인은 아무런 연관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 시인의 시로 진주를 처음 접했다. 이번에 수업을 맡아 김언희, 김이듬 시인의 시를 강독했고…… 꼼꼼히 시를 읽는 동안에는 진주에 있었다. 회마다 서울에서 진주까지 거리를 이동했다. 직접 감으로서 막연한 기대와 환상이 현실이 되었다. 과연 수업을 마칠 때는 진주에서 무엇을 더 보고 듣고 생각하게 될까? 실제는 환상을 앞선다. 경험에 대해서만큼은 온전히 ‘알 수 없다’.

수업을 위해 배정된 책방은 진주 문산읍에 위치한 보틀북스라는 독립 서점이었다.

수업을 위해 배정된 책방은 진주 문산읍에 위치한 보틀북스라는 독립 서점이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시내 버스를 타면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서점이 있었다. 나는 첫 수업 때 수업을 미리 신청해둔 친구와 동행했다(친구는 수업 내내 고개를 푹 숙이고는 묻는 말에도 대답을 잘 안 했다). 첫 수업은 8월 중순에 시작했으며 덥고 습한 날이었다. 8월 내내 나는 집 밖을 나가거나 타지에서 활동하는 일이 잦았다. 너무 더워서인지 시간을 다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8월은 바빴는데, 긴 시간을 진주에 있었다.

동행한 친구와 함께 유명한 노포를 찾아 육회 비빔밥, 가오리무침을 먹었다(나중에 다녀온 곳을 수강생분들에게 소개하니, 그들은 현지인이 정작 가지 않는 가게라고 말해주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촉석루를 보기 위해 진주성에 갔다. 매표소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촉석문이라는 별칭을 지닌 성문은 개방되어 있었다. 당시 통화 중이던 친구는 핸드폰을 한 손에 든 채 나를 따라 걸었고 나는 진주성 안을 구경했다. 성 안은 넓었는데 촉석루와 국립진주박물관, 의기사, 영남포정사, 북장대, 창렬사, 서장대, 호국사, 임진대첩계사순의단 등이 있었다. 성벽을 따라 걸어도, 중간을 가로질러도 좋을 만큼 1,760m 지름으로 축조된 진주성은 많은 사람과 자연물, 건축물, 동식물들이 가득했다.

거주지인 서울에서 진주까지 오려면 4시간이 넘게 걸린다. 연달아 수업이 있는 날이면 나는 진주에 숙소를 잡아 진주 시내를 관광하곤 했다. 동행하던 친구와는 촉석루에 입장하지 못했다. 매표는 촉석루 출입에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수업을 하러 진주에 들러 다시 진주성에 갔다. 그때는 오후 4시가 안 된 시각이었고 매표소에서 표를 발권할 수 있었다. 촉석루는 진주성을 지키던 주장의 지휘소로 분명한 정자의 이미지였다. 나는 시원한 마룻바닥을 직접 두 발로 디뎌도 보고 남강을 내려다보기도 하는 등 촉석루 위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연인과 동행한 사람들, 친구들과 여행 온 무리들, 가볍게 나들이를 나온 진주 시민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촉석루 위에서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마치 촉석루 안의 공간만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새로 사람들 몇 명이 들어오고 나와 동행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돌계단을 내려왔다.

우리는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시를 읽었고 시를 썼다.

시 수업을 위해 사람들을 새로 만나면 대부분 시를 읽지 않거나 시를 멀고 어렵게 생각한다. 처음에만 그렇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누구보다 열의를 갖고 각자만의 시를 찾아 읽기에 집중한다. 시란 무엇일까? 이렇게 시를 읽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어 매주 모이고 분석에 열중하는 것은 시가 ‘생각보다’ 의미 있거나 중요한 무언가처럼 보이게도 한다. 시詩는 시인이라는 사람이 쓴 문학 장르의 한 부분으로, 한자를 풀이하면 모양 그대로 말씀과 절로 이루어져 있다. 시는 분명 마음을 닦고 수련한 끝에 나타나는 언어일 것이다. 아니라면 읽는 이들도, 쓰는 이들도 이렇게 열심이고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일 리 없다.

보틀북스에서 수업을 진행하며 많은 사람을 새로 만났다. 내 두 권의 시집에 사인을 해 드리기도 했다. 최선을 다해 마음을 꾹꾹 눌러 사인을 한 것 같은데 돌아서면 아쉬운 마음만 남았다. 우리는 각자의 호칭을 ‘선생님’으로 불렀다.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귀하고 아름다운 인연들. 그들에게 좀더 잘하고 싶고 더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도 받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다. 내 마음은 나만이 감각할 수 있다. 얼굴은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나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표정들을 오래 들여다본다. 되도록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웃음이라는 것도 웃음 이면의 ‘노력’이 보이고…… 웃음이 만약 ‘애씀’의 증표라면 안 웃어도 좋으니 사람들이, 오늘 만난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행복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내 마음이 강물이라면…… 강물 위에 드리운 풍경으로 나는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들의 시를 읽고 선생님들의 시를 나눠 읽으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서로의 감상이 다 다르지만 또 같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시를 읽었고 시를 썼다.

오은경

2017년 현대문학 시 부문 신인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한 사람의 불확실>(2020), <산책 소설>(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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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맛있게 먹어요, 냠냠냠냠냠꾸우우울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