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송지현 소설가
작가와 함께하는 행북학교 2기 후기 | 소설 쓰기 반 | 서점 : 삼척 연 책방 | 강사 : 송지현 소설가
수업 후기를 요청 받았을 때 한 동안 아무 것도 적을 수가 없었다. 연책방에서의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나의 한 시절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였다. 수업이 끝나고도 나는 몸과 마음이 아파 한참을 앓아 누워야만 했다. 그래도 나의 한 시절을 짧게나마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수업 이야기는 아주 조금, 대신 나의 일상이 가득 담긴, 이 후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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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삼척으로 강의를 하러 갈 의향이 있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속으로 ‘당연히, 네!’를 외쳤다. 물론 진짜 ‘네’를 외친 것은 강의료를 듣고 난 이후였지만. 이젠 감성보다 이성이 앞설 나이…….
각설하고,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겠지만 나는 삼척 인근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동해에서 2년간 거주한 적이 있다. 그 기억을 『동해생활』이라는 책으로도 발간하여 동해는 내게 무척이나 특별한 동네가 되었다. 문제는 2년의 동해생활이 끝난 뒤에도 살던 집이 좀체 팔리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니까, 강의 문의가 들어온 건 마침 여름 초입이었고, 여름 동안 매주 바다를 좀 즐기고 싶었던 데다, 이왕 매주 가는 거 적극적으로 집도 좀 팔아볼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들에 고민없이 ‘네!’를 외친 거였다.
사실 동해에 살면서 삼척에는 몇 번 가지 않았다. 삼척 mbc에서 진행한 <보라보라>라는 tv 프로그램에 ‘연고도 없이 동해에 내려와 사는 자매’라는 주제로 출연하기 위해 가본 것이 다였다. 촬영이 끝나고 물닭갈비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서 첫 수업에 가기 전 물닭갈비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렇다. 매주 삼척에 수업이 있어 동해집에서 머물 예정이라고 하니 친구들이 줄줄이 따라온 것이다. 첫날 멤버는 동해생활의 시작을 함께했던 동생과 k. 오랜만에 동해에 내려가며 우리는 감상에 젖어 예전을 추억하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 셋은 모두 실업자였다. 함께 실업급여 신청을 하러 강릉에 가기도 했다. 그때 k는 우리와 2주 정도를 보냈고 동생과 나는 그 뒤로 쭉 동해에 남아서 살았다. 지금 k는 건실한 기업에 다니고 있고 동생은 원하던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거참, 삶이 조금 나아졌다고 느끼다니, 신기한 일이라고, 그런 얘기를 하며 물닭갈비를 먹었다.
그렇게 도착한 연책방은 우드톤의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먹고 나는 수업을 하러, 동생과 k는 해변을 구경하러 갔다. 책방을 찾느라 조금 헤맸고, 헤매는 동안 괜히 고춧가루가 많은 음식을 먹었나 싶었다. 첫 수업을 하기 전 늘 그렇듯 약간의 긴장감으로 몸이 뻣뻣해졌고 알 수 없는 12인의 수강생이 두렵게 느껴졌다. 그렇게 도착한 연책방은 우드톤의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으며 무엇보다 해가 잘 들었다. 눈이 큰 책방지기님이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다며 커피를 내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피냄새를 맡으며 책방의 큐레이션을 살폈다.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와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이라니, 훌륭한 큐레이션이네요, 라고 말하자 레이스로 가려진 작은 부엌 안쪽에서 책방지기님이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수강생은 모두 12명. 나는 농담처럼 무료강의의 경우 마지막 수업엔 1/3도 안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고, 마지막 수업을 세명이서 진행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다들 웃었고, 웃은 김에 친해질 겸 요즘 각자가 빠져있는 컨텐츠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긴장 속에서 첫 수업이 끝났고, 동해에 있는 집에서 내일까지 머물 예정이라는 내 말에 다들 앞다투어 맛집을 추천해주었다. 동생과 k와 그날은 아침까지 마셨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해수욕을 했다. 정말 동해생활이 다시 시작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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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내놓은 부동산이 적극적인지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매주 강의를 가면서 아무래도 이번 강의가 끝나면 예전처럼 동해에 자주 오지 못하리라 예감했다. 그래서 더 신나게 놀았다. 매주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해수욕을 하는 것은 물론, 그동안 못 갔던, 혹은 가고 싶었던 장소에 갔다. 그렇게 9주를 수업이 끝나면 정신없이 놀았다. 그리고 예감대로 삼척 강의 마지막날 집이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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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상과 달리 거의 대부분의 수강생이 완강을 했다. 그래서 연책방 바로 앞에 있는 호프집에서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 외부강의를 여러번 했지만 뒤풀이를 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왠지 삼척이라는 공간탓인지 조금 더 친밀해져도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 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나이도 공개했다. 닭도리탕과 치킨과 골뱅이를 먹으며 그간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매번 대전에서 올라오던 위정씨는 마지막날 삼척도 구경할 겸 숙소를 잡았다고 했다. 우리는 위정씨에게 박수를 보냈다. 책방에서 와인으로 2차를 하고 헤어졌다. 모두와 인사를 하고 책방 문을 나서는데 술기운 때문인지 괜히 마음이 시큰했다.
동해집에 있던 짐을 모두 빼고 마지막으로 베란다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집을 판 것이 아니라 풍경과 시절을 판 기분이었다. 주저앉아 울기엔 서울이 너무 멀었다. 늘 서울에서 떠나오기만 했지, 동해에서 떠난다는 느낌을 받긴 처음이었다. 힘을 내어 서울로 돌아갔다.
나의 예상과 달리 거의 대부분의 수강생이 완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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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고서도 한동안 수강생들과 함께 만든 채팅방엔 글이 올라왔다. 그게 좀 위로가 되었다. 언제든 다시 내가 사랑했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느낌. 시절들이 한 번에 닫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 그리고 연책방이라는 삼척의 작은 서점이, 이상하게도 돌아갈 수 있는 곳으로 남아있다는 것. 그런 기분들로 또 오늘을 지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후기를 마치며 적는다.
송지현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에세이 『동해생활』이 있다.
연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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