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이야기_보틀북스 – 정우신 시인


청년들의 이야기_보틀북스 – 정우신 시인

지역서점 2탄은 진주에 자리한 ‘보틀북스’라는 서점이다. 진주를 가는 날에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모니터링 시간에 늦진 않을까 염려하며 새벽부터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표를 끊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설렌다. 장시간 여행에는 간식을 먹으며 목적지로 향하는 즐거움도 있으나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아 진주를 가는 내내 버스에서 마스크를 쓰게 되어 아쉬웠다. 다섯 시간 정도를 달려 종착한 곳은 진주혁신도시정류장이었다. 여러 대의 버스들과 상점들이 즐비한 시외버스터미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다소 당황하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토지주택공사 본사와 대단지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혁신도시의 위엄이 느껴졌다고 할까. 그렇다. 난 진주를 최근에 처음 가봤다. 웬만한 수도권 신도시보다 발전한 진주의 모습을 감상하며 ‘보틀북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점 주소지는 경남 진주시 문산읍 월아산로 1047-14이다. 진주문산LH아파트 상가 1층에서 운영되고 있다. 강의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였는데, 유튜브 영상제작을 위한 촬영팀이 먼저 와 있었다. 청년 두 명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서점을 찍고 있었다. 외형부터 내부의 굿즈까지 하나하나 여러 각도에서 촬영을 이어갔다. 2022 행북학교는 사업에 참여한 서점들을 유튜브 shorts로 남겼다. ‘보틀북스(진주), 연책방(삼척), 두루미책방(금산), 도심산책(남양주), 낯설 여관(수원), 함덕32(제주), 고요서사(서울), 책방 펨(안산)’ 총 8개의 서점으로 향하는 길과 서점의 모습들을 아름답게 압축하여 담았다. ‘보틀북스’는 아파트 상가에 위치에 있지만, 주변은 아직 낮은 지붕으로 된 집들이 많았다. 집과 집 사이로 작은 골목길이 이어져 있었다. 나뭇잎과 부딪치는 여름의 빗소리를 들으며 골목길을 걸었다. 틈틈이 짖는 개들과 담장 위의 고양이들이 외부인을 반겨주는 듯했다.

동네 산책을 마치고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장님도 청년 사장님이었다. ‘보틀북스’는 20개 이상의 모임을 운영하여 백여 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할 정도로 독서 모임이나 프로그램이 잘 운영되는 서점이라고 한다. 지역성과 서점의 특성이 잘 만나 시너지가 된 사례로 보인다. 청년 사장님은(청년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잘 다니던 공기업을 퇴사하고 책방을 차렸다고 한다. 서점을 차리며 경험한 일들과 여러 가지 생활의 고군분투를 녹여 책을 쓰기도 했다. 나는 그 책을 사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읽었다. 청년이란 이름이 가진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수강생들이 들어왔다. 강사가 집필한 시집을 미리 주문하고 서로서로 지난 과제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모습에서 행복이 보였다. 촬영팀, 서점 사장님, 수강생, 강사 모두 청년이었다. 이렇게 ‘2022년 청년 책의 해’의 취지에 딱 들어맞는 경우가 있었을까. 과장을 조금 하자면 모여있는 것만으로도 존재들이 빛났다. 동시에 나는 ‘저 나이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하는 어떤 자책감이 들었다.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강의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강사가 과제로 내준 시집의 평을 돌아가면서 이야기했다. 강사는 ‘어떤 부분이 어려웠는지’,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는지’ 등의 질문을 던졌고, 수강생들은 ‘메시지가 잘 안 보여서 어려웠다’라거나 ‘자신과 비슷한 감정이나 상황’이 느껴진다고 답변을 하였다. 집중과 몰입이 빠르게 되는 강의였다. 강사는 시에서 진술과 메시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주고 한 행, 한 행 차근히 짚어주며, 시의 의미와 분위기를 함께 찾아 나갔다. 시를 읽고 각자의 의견을 들은 후 그것을 토대로 분석을 해나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난해한 시가 펼쳐져도 이들과 함께라면 즐겁게 감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사는 ‘경험적인 것’ ‘시점’ 등을 말하며 시의 구조를 파악하여 주었다. 수강생들의 질문이 늘어났다. 이후 강사는 ‘비’, ‘의자’ 등의 시어를 가지고 ‘이미지’에 관한 설명을 했다. ‘자신만의 비란 무엇일까’ ‘나에게 의자는 무엇일까’ 등의 질문을 던지고 직접 창작하는 시간을 가졌다. 얼마 후 수강생들은 돌아가면서 ‘비’와 ‘의자’에 관련된 글을 낭독하였는데 비 오는 여름의 어느 날, 서점에서 그렇게 감성에 젖은 글들을 들으니 참 좋았다. 나의 청년의 향기가 책방으로 잠시 불어왔다가 사라진 듯하다.

‘보틀북스’에 있던 청년들, 그들 각자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한 사람의 시간과 또 다른 한 사람의 시간이 모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기억보단 망각이 많은 인간에게, 그것이 누적되어 자신의 인생에서 사진처럼 남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 모든 원리를 청년들은 직감적으로 아는 듯하다. 비록 당장 어떤 결과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마음이 먼저 가는 곳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 거기 어딘가에 보물처럼 숨어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청년이 모인 곳에서 나는 아름다운 에너지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야간 버스에서 오랜만에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022년 청년 책의 해’에 참여했던 청년들은 오 년 후, 십 년 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청년 예찬론을 펼쳤지만 나는 다시 청년으로 돌아가지 않을 듯하다. 그 시절의 가난과 우울을 다시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삶이 너무나 무거워 어쩌지 못했던 시절, 나는 한 구절을 가지고 오래 버텼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을 위해 자신만의 구절을 찾거나 창작하길 바란다. 그 구절을 남기며 2022 행북학교 모니터링 방문기를 마친다.
 
‘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

정우신

시집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이 있다.

보틀북스

진주의 작은 동네서점&문화사랑방
책을 맛있게 먹어요, 냠냠냠냠냠꾸우우울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