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북학교와 서점_함덕32 – 이태형 소설가


행북학교와 서점_함덕32 – 이태형 소설가

‘함덕32’는 행북학교 사업을 두 번 참여했다. 올해가 2회째이니 전부 참여한 유일한 서점이라 볼 수 있겠다. 1회째는 외부 심사위원을 위촉하여 선정 심사과정을 거쳤고, 2회째인 올해에는 추첨을 선택했다. 심사와 추첨 모두 선정되었으니 적어도 행북학교에 있어서는 실력과 운을 모두 가진 공간이 되었다. 그리하여 ‘함덕32’에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본 서점은 작년에도 방문기를 쓴 적 있으니, 이 기회에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겠다.

물론 작년 심사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실력이 없는 곳이라는 말은 아니다. 특히나 행북학교처럼 주최 측에서 기획한 사업을 받아서 수행만 하는 경우 더 그러하다. 심사라는 것은 점수표라는 기준에 따라 이루어질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오랫동안 더 많은 문화 사업을 수행해온 서점들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자체적 컨텐츠를 운영할 수 있는 서점 말고도 경험은 적지만 새로 시작하는 공간들에게 최대한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러한 이유로 올해 2022년 청년 책의 해 행북학교는 추첨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다만 여기에도 문제가 발생했는데, 책임감 없이 행동한 곳도 있었고 사업을 편의에 따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려 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상당히 왕성하게 활동을 해온 책방들도 있으니 이런 문제들이 추첨으로 인해 발생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잘 안된 하나는 잘 된 열 개를 가려버리기도 한다. 결과적으로는 추첨이라는 형식이 마치 복권처럼 단지 운으로 대관비라는 이름의 지원금을 수령하는 과정으로 인식된 것은 아닐까 우려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름 각 지역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다양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서점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는 것과 새로 시작된 서점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 이 둘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것 아닐까 고민이 들었다. 그리하여 내년에는 다시 심사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는 각 서점의 열정과 의미를 점수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것이 옳을까. 다양한 방향에서 고민이 든다.

이러한 고민을 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의도치 않게 연속으로 참여하여 작년의 프로그램과 올해의 프로그램 모두를 수행하여, 상황에 따른 변수를 줄여준 함덕32라는 서점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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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책의 해’와 ‘행북학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2018 책의 해’는 디지털 환경의 진화 등으로 인한 출판문화산업의 위기 구조를 타개하고 출판 수요를 창출해 출판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추진되었다. 2019년에는 준비 기간을 가졌으며, ‘2020 청소년 책의 해’를 시작으로 세대별 주제로 여러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사업 중 행북학교는 ‘2021 60+ 책의 해’에서 시작되었다. 작가를 활용하는 사업들은 이미 많이 있지만, 대부분 출연자의 역할이고 작가가 좀 더 능동적으로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사업은 창작 수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책에 있어서 가장 일선의 생산자 위치에 있다고 해도 될 작가들이 글을 읽는 사람뿐 아니라 쓰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읽는 사람이 모두 글을 쓸 필요는 없지만, 쓰는 사람들은 모두 지독한 독서가에 가깝다. 이는 헝가리 출신의 소설가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고 표현한 유명한 발언과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취미로 또는 자기발전을 위해 책을 읽는다. 물론 요즘에는 이러한 최소한의 책읽기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람들의 독해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받는다. 독해력이 떨어진 원인 중 하나는 어휘력이 부족해진 영향도 있을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문장이 있다. ‘금일 심심한 사과를 드리면서 사흘간 무운을 빈다’가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어휘를 몰라도 상황과 문맥으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모국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정확한 단어의 뜻을 몰라도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 그게 어렵다면 더 이상 모국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요즘에는 단어의 뜻을 언제 어디서나 휴대하는 스마트폰을 통해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헝가리 내전으로 인해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몰래 넘던 20대 초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가방에 아기용품을 뺀 자신의 유일한 소지품이 사전이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얼마나 편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얼마나 게으른 읽기를 하고 있는가.

중학생 시절 한 친구가 학교에서 책을 상품으로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은 니체의 너무나도 유명한 저서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우리는 한글로 쓰인 그 책을 도저히 해석할 수 없었다. 그때 우리는 너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겠냐며 서로 돌려보고 겉으로는 크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무지를 부끄러워했다. 아마도 그 중 몇은 집에 돌아가 그 책을 다시 시도했을 것이며, 지금의 본인처럼 30년이 지난 이후에도 지난 시절의 무지를 곱씹는 예도 있으리라.

행북학교는 방금 마지막으로 말한 부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 즉 자신을 망가뜨릴 정도로 독서에 집착하는 소수를 위한 시간이다. 효과가 미미하고 수혜자가 적더라도 여기 모인 사람들 중 훗날 한 명의 작가가 탄생한다면, 그리고 그 작가로 인해 나올 작품을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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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덕32는 작년에도 방문기를 썼기에 이 기회를 빌어 다른 이야기를 해 보았다. 작년에는 가을에 방문했는데, 올해는 여름에 방문했다. 얼핏보기에 청년이라 부르기에 연륜이 있어 보이는 수강생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청년에 대한 기준에 ‘본인이 아직 청년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이는 작가란 스스로 작가라고 선언한 순간 탄생하는 것이라는 말과도 비슷할 것이다. 스스로 청년이라 생각한다면 아직 열린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함덕해수욕장 옆에 위치한 문화공간, 내년에도 행북학교와 좋은 인연이 있기를. 그리고 그 자리에 계속 자리 잡아 의미를 넓혀가길 바란다. 다음에 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바다에 다가가 발이라도 한 번 담그고 돌아와야 겠다.

이태형

소설가.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그랑기뇰』이 있다.

함덕32

제주시 조천읍 함덕에 소재한 ‘문화예술연구소 함덕32’의 협력 서점으로 인문, 예술과 연계된 출판, 판매, 기획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