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장소에서 만난 사람 – 정우신 시인


낯선 장소에서 만난 사람_낯설여관 – 정우신 시인

가을비가 지나고 제법 쌀쌀해졌다. 지난여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던 것 같다. 특히 서점을 탐방할 땐 항상 비가 왔었다. 축축한 공기, 서점의 종이 냄새, 비에 젖은 도시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비가 오면 정지화면 속을 걷는 느낌이 든다. 도시의 무서운 속도가 조금은 느려진 듯하다. 편안과 불안이 동시에 온다. 수원 화서역 근처에 자리한 독립서점 ‘낯설여관’을 방문했을 때에도 폭우가 쏟아졌다. 주소지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로 71번길 33 2층이다. 평소에 차로 한 시간이면 갈 거리인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수업 시작 전에 도착하여 여유롭게 서점도 둘러보거나 주변을 산책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쉬웠다.

늦은 저녁, 누군가의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은 낯설다. 모니터링이라는 이름이 지닌 어떤 경계심에 대해 알고 있었으면서도, 서점에 들어선 순간 외부인이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022년 청년 책의 해’의 프로그램으로 운영한 ‘행북학교’는 원활한 수업과 소통을 위해 모니터링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번 방문은 오래전의 ‘나’를 낯선 곳에서 만나는 느낌이었다. 감시의 개념보단 친밀과 독려를 위해 모니터링을 갔는데, 뭔가 어긋나는 기분이었다. 이 모든 게 날씨 탓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청년’도 여러 가지 오해와 왜곡으로 이루어진 시기 같다. 잘해보려고 하는데 자꾸만 미끄러지는 것, 노력하면 할수록 뒤로 밀려나는 것, 나의 청년은 늘 쫓기고 지는 기분이 들었다.

‘낯설여관’은 사진 스튜디오도 함께 운영하는 서점이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들어서면 ‘낯설여관’이라는 이름처럼 묘한 공간이 펼쳐진다. 입구와 복도는 잘 기획된 미술관처럼 놓였고 호수가 적혀 있는 각각의 방은 방문객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이미지가 생각나기도 했다. 서점 안에 들어가니 친환경 굿즈부터 여러 분야의 서적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구매욕을 자극하는 제품들이 많았다. 이 서점에선 물건을 사면 다른 사람이 쓰던 종이봉투에 담아준다. 사장님의 환경 사랑과 실천에 영향을 받아 그날 이후로 상점에 갈 땐 나도 봉투를 들고 간다.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원래는 스튜디오로 활용되는 공간 같았다. 방 한쪽에 조명과 사진 장비들이 놓여있었다. 쾌적하고 환한 공간으로 수강생들이 모여들었다. 기록용 사진 몇 장을 찍어보았다. 넓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수강생들, 청년이라고 생각하니 바둑판에 흰 돌과 검은 돌이 차례로 놓이는 듯 보였다. 이들이 나중에 어떤 모양의 집을 이루며 나아갈지 궁금했다.

시 수업을 듣기 위해 폭우를 뚫고 오는 청년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감정을 언어로 전환하여 자신의 깊은 곳을 보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역시 날씨 탓인지 지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미리 도착하여 무언가를 훑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강사는 시에 관한, 시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의식을 던져주었다.

교육 문제일까. 사회적 분위기일까. 개인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분명 무언가를 생각했는데 아마 부끄러워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답은 없는데 정답이 없다고 하는 순간 학생들은 대답을 더 어려워한다. 나아가 생각한 것을 언어로 바꾸는 것을 더더욱 힘들어한다. 물론 자기 생각을 언어로 바꾸기란 쉽지 않다. 생각이 말이나 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다른 생각이나 의도가 더해지거나 덜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무’라고 말할 때 다른 사람들은 ‘나무’의 보편적인 형태를 짐작하지만, 그 사람이 말한 ‘나무’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책의 가치는 이런 데에서 빛을 발한다. 책은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 낯선 사람에게서 나의 삶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나의 삶에서 낯선 사람을 불러낼 수도 있다.

모니터링이 있던 날은 ‘해방’이란 키워드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수업시간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경제적인 해방, 시간으로부터의 해방, 무한한 자유를 갈망하는 해방 등의 말이 오갔다. 각자가 생각하는 ‘해방’이란 단어가 자신의 삶과 경험 속에서 변형된 듯 보였다. 예컨대 백 명의 대장장이에게 ‘칼’을 갈아오라고 하였을 때 그 칼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이 수강생들이 가져온 ‘해방’이란 말 또한 색과 향기가 다채로웠다. 자신이 생각한 ‘해방’을 다른 사람의 ‘해방’ 옆에 가지런히 놓아보면서 ‘해방’의 본질에 대해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시어를 고르고 다듬는 데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시는 언어의 섬세한 운용이 필요하다. 보편적인 서사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만들 것인가, 특수한 것들을 어떻게 보편적으로 녹여낼지에 대한 기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청년 시절 읽었던 어느 시집 시인의 말에 있던 내용이 떠오른다. “어떤 이는 공원을 감옥처럼 여기며 살고 어떤 이는 감옥을 공원처럼 여기고 살고 있으니, 세상엔 안과 밖이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 놓인 욕망의 철창이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는 문장, 그때는 이 말이 크게 닿지 않았다. 공원은 공원이고 감옥은 감옥인데 왜 다를까. 기표가 다른 이 두 시어가 왜 비슷하면서도 다른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삶을 비춰보면 그리 어려운 말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원과 감옥, 해방과 자유, 낯섦과 익숙함 모두 그런 듯하다. 낯선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미래의 ‘나’를 떠올려 본다.

정우신

시집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이 있다.

 낯설여관 204호

수원 작은 골목에 위치한 <낯설여관>은 204호 동네책방&제로웨이스트샵, 203호 동네사진관&작은영화관으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입니다.
과거 여관이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가던 공간이었던 점에서 착안하여, 일상 여행자들이 잠시 머물러 지친 마음을 달래고 쉼을 얻길 바라며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