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이라는 이름_용산 고요서사 – 이태형 소설가


해방촌이라는 이름_용산 고요서사 – 이태형 소설가

용산이라는 이름은 특이하다. ‘龍山’, 그야말로 용이 나타난 산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딱히 산이라고 부를만한 곳이 없으나 언덕이라는 의미도 있으니, 주한미군들 표현대로 ‘Dragon Hill’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모두 사람이 들어 살게 되어 산이라 부르기 힘들지만, 사람이 살지 않던 시절 이 장소는 산이라 부르기 충분했던 건 아닐까. 마치 이곳 해방촌이 위치한 언덕 자리처럼 말이다.

한때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용산이라하면 떠올리는 곳이 용산역 주변 전자상가가 전부일 것이다. 한때 상인들의 바가지와 사기로 ‘용던’이라는 멸칭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용산의 ‘龍’과 ‘Dungeon’의 ‘던’을 합친 단어임을 생각하면 그 또한 나름 중세 판타지 소설에 나올법한 지명이며 당시 비디오 게임의 성지였던 시절을 생각하면 ‘드래곤 던전’이라는 나름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용던 가실 파티원 모집합니다.’라는 우스갯말은, 인터넷 쇼핑의 발달과 함께 사라져, 이제 그 또한 어느 옛날 한 시절 이야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오랫동안 용산을 단지 용산역 주변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이태원은 그냥 이태원, 서울역은 서울역. 마치 용산은 용산역 주변인 것처럼. 해방촌 역시 그러하다. 해방촌이라는 지명은 알고 있지만, 해방 후 실향민들이 모여 정착한 달동네라는 사실도 알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나마 근 10년 사이 문화예술거리로 이름을 얻어가고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 늘긴 했다.

하지만 이런 관심은 언제나 다른 걱정을 하게 만든다. 오래전 이제 선생님이라고 부를법한 작가들은 명동에서 주로 모였다고 한다. 명동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신촌으로, 거기서 밀려나 홍대로, 합정으로 상수로 망원으로 밀려났듯. 이태원, 경리단 그리고 해방촌이라는 과정도 문화적 젠트리피케이션의 자연적인 수순은 아닐까. 여기에서 밀려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진지함을 대중성이 대체해 가며 결국엔 개성과 상상력으로 발전한 거리가 프렌차이즈화 되며 빛을 잃는 과정이다.

해방촌이 처음 이루어진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여기에 만들어진 공간들은 지역의 외진 공간들과 사뭇 다른 의미를 나에게 전달해 준다. 이는 어떤 지점에서의 안타까움이다.

 
그렇게 이 언덕 위에도 작은 서점이 있다. ‘고요서사’라는 이름의 이 공간은 만약 당신이 여기에 살아가고 있다할지라도 문화에 관심이 없다면 그냥 지나칠지도 모를 모습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일상에 존재하지 않을 모습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 옆에서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책방의 외관은 허버트 조지 웰스의 「마술 가게」라는 소설에 나오는 장소를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서점지기 분은 소설 속 가게 주인처럼 의뭉스러운 비밀을 우리에게 전달하지는 않는다. 서점 이름처럼 고요하게 서사 즉 내러티브를 방문객에게 전달한다. 이는 결국 우리가 서점에 모여 각자의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지만, 결국 고요 속에서 읽고 쓰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는 느낌을 전달해 주는 것만 같다. 다만 마술 가게 같다고 표현한 것은 언젠가 돌아봤을 때 내가 이 가게 즉 서점을 다시 찾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이리라. 하지만 소설에서 마술 가게를 다시 찾지 못하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듯. 사라질 수 없는 가치를 만들어 갈 것이라 확신한다.

아주 작은 공간이다. 오래된 건물, 외부는 굵은 기둥 사이로 유리창이 있다. 저녁이 되면 내부의 빛이 새어 나와 빛난다. 길을 걷던 사람들이 이 빛에 이끌려 서점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좋겠다. ‘행북학교’에 참여한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 운명처럼 이끌려 들어와 머물게 되어, 사람이 아닌 어쩌면 책도 아닌, 이 장소에 애정을 갖게 된 게 아닐까.

네 명에서 다섯 명이 둘러앉으면 가득 차 발 디딜 곳 없는 공간. 서로의 작품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 이런 곳에서 나의 첫 작품을 만나는 작업을 한다는 것은 분명 영감받을 시간이라 생각된다.

여기에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계절 꾸준히 모여 소설을 쓴 사람들이 있다. 나의 이야기, 나의 상상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장소. 여기서 글을 쓴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쓰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작가가 되어 다른 자리에서 이곳의 경험을 이야기하진 않더라도 내가 거기서 문학을 소설 쓰기를 시작했지, 떠올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리고 ‘행북학교’에서 작가와 만난 경험이 앞으로 문학을 대하는 태도에 고요한 영향을 줄 수 있기를. 그리고 강의를 진행한 젊은 작가도 여기서 만난 열정을 잊지 않고 써 나간다는 행위에 서사를 부여할 수 있기를.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좁은 장소에서 밀접하게 만나, 서로의 작품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부족했다. 타인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분명 상처받을 일도 늘어날 것이지만, 문학은 그런 것 아닐까. 이 장소는 그런 상처들은 문학으로 이어질 수 있게 안내할 수 있는 장소로 보인다.

녹사평역에서 걸어 올라와 서점에 들렸다가 서울역을 향해 걸어 내려간다. 아직도 서울에 이런 장소가 남아 있구나. 마치 어렸을 때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본 모습 같다. 작은 서점들은 이렇게 시간이 멈춘 듯한 동네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이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장소의 개발이 최대한 천천히 진행되기를 바란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여길 지나며 자신만의 마법을 하나씩 얻어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태형

소설가.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그랑기뇰』이 있다.

고요서사

서울 용산구 해방촌의 오래된 벽돌집들 사이에 숨어 있는 아주 작은 문학서점. 2015년 10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고르고 고른 소설·시·에세이로 서가의 중심을 채우는 ‘문학 중심 서점’을 지향하며 책을 혼자 읽고, 함께 읽고, 나눠 읽는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서점이 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