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생활을 산책하기_도심산책 – 정우신 시인
저녁 6시, 경의선 도심역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 도심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을 사람들이 내리는 역이 도심역이라니 아이러니하다. 도심역 앞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뒤로는 갑산과 예봉산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도심역 2번 출구를 나와 골목길로 조금만 걸으면 서점 ‘도심산책’이 있다. 주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로이다. 멀티플렉스가 만연한 시대에 독립서점은 소중하다. 서점에선 언제든 어떤 가능성을 만날 수 있다. 독립서점에선 거기에 더해 나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익명의 편리함으로 이루어진 도시 혹은 아파트 생활에서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하고 감정을 교류할 공간이 있는 것은 행운이다.
‘2022년 청년 책의 해’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행북학교’ 수강생들이 ‘도심산책’에 모였다. 수업에 참여한 사람의 구성은 직업부터 취미까지 다양하다. 각자의 삶에서 잠시 빠져나와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습이 묘하다. 서로의 생활이 한 테이블에 겹쳐져 놓여있다고 해야 할까. 인사를 나누기 전의 서먹함과 설렘이 서점 내부의 공기 방향을 바꾼다. 개인적으로 이 순간을 좋아한다.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는 상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의 맞은편에도 있을 때 나는 아름답다고 느낀다. 청년을 비유하자면 이런 단계 아닐까. 아직 세상에 자신을 소개하기 직전의 어떤 얼굴들.
독립서점에서 프로그램을 수강한다는 것은 ‘나를 조금 더 잘 알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얼굴들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찾아보고 싶은 것 말이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세상의 어디쯤 와 있는 걸까?’, ‘미래에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들을 거쳐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향하는 것. 그런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이 많아질 때 책이 필요한 것 같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감이라도 하듯 강사는 첫 시간부터 질문과 과제를 내주고 있었다.
타인에게 글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수업이 시작되었다. 강사는 시를 활자화할 때 적절한 글씨체와 글씨 크기, 행/연 갈이, 쉼표와 마침표의 사용 등 사소한 것부터 맞춤법, 띄어쓰기까지 기초적인 제반 사항을 알려주고 그것이 왜 그렇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차근히 설명을 해주었다. 시를 처음 접하는 수강생들도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며 시의 형식에 익숙해져 가는 듯 보였다. 자연스레 나의 첫 습작 시간을 떠올리게 되었다. 무지에서 온 당당함과 부끄러움의 한 시절을 통과한 듯하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밤이 ‘도심산책’만 남겨두고 어슴푸레 잠긴다.
수강생들은 언제 어색했냐는 듯이 의견을 내고 질문의 함의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각자의 일과를 마치고 와서 그런지 나른해 보였는데 점점 수강생들의 눈빛이 빛났다. 이후 과제를 확인하는 시간이 있었다. 과제는 시를 한 편 창작해오는 것이었고 강사는 수강생 각자의 시와 어울리는 이미 발표된 다른 시를 가져왔다. 마치 퍼스널 컬러 테스트처럼 ‘나의 시는 어떤 색깔’일지 알아보는 데에 재미가 있었다.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던 것이 어떤 모양인지, 어떤 향을 내는지 파악해보는 시간이었다. 이후 수강생들은 서로의 시를 돌아가면서 읽었다. 시의 의미를 추적해나가며 다른 사람의 리듬 속으로 진입하는 듯이 보였다. 강사는 시를 악보로 생각하며 행/연 갈이, 반복, 행간 등을 중요하게 보라고 주문하였다. 그러면서 퇴고의 중요성에 언급하였다.
‘도심산책’에선 서로의 삶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것이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주변을 산책했다. 도심역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빠져나오고 있었고 근처 도곡근린공원에는 주민들이 운동하고 있었다. 산책하며 ‘시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였다. 사람들을 작은 서점으로 끌어당긴 힘은 무엇일까. 일과를 마친 후 빨리 집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싶을 텐데, 서점으로 우리를 모이게 한 동력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다시 서점으로 돌아가니 강의 시간이 훌쩍 넘었음에도 수강생들은 여전히 수업에 집중했고 강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것은 어떤 아름다움일까. 이름 붙일 수 없다. 감정의 종류도 아닌 듯하다. 자본주의에서 물질이 아닌 것들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편의점에 들려 막걸리 두 통을 사서 골목을 빠져나가는 한 중년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그것은 시적일까. 계절 내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모니터링이 끝난 후 강사에게 연락이 왔다. 가을을 직접 지칭하지 않는 시 쓰기를 위해, 금지어를 추천하여 달라고 하였다. ‘하늘, 구름, 바람, 노을, 이슬, 은행, 단풍, 낙엽, 갈대, 억새, 귀뚜라미, 매미, 잠자리, 코스모스, 밤, 대추, 편지, 벤치, 공원, 천변, 놀이터, 사랑, 상처, 추억, 기억’ 등의 시어가 있었다. 아마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들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늘 익숙한 것만 보고 싶어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또는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기도 한다. ‘도심산책’을 둘러싼 사람들은 적어도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우리 동네도 이런 서점과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 것이다.
‘도심산책’ 수강생들은 강의가 끝난 지금도 모여 책을 읽고 담소를 나눈다고 한다. 인연이다. ‘2022년 청년 책의 해’, ‘행북학교’, ‘도심산책’, 강사, 수강생 모두가 모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책’이라는 공통 주제로 묶인다. 책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는 테이블을 생각해본다. 청년의 ‘나’가 맞은 편에 앉아 있다면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정우신
시집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이 있다.
도심산책(경기 남양주)
산책하듯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는 책읽기가 일상에 스며들도록, 남양주 어느 작은 동네 모퉁이에 스며들듯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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