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안산 그리고 책방 펨 – 이태형 소설가
나에게 안산에 관해 묻는다면, 가깝고도 먼 곳이라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우면서도 오래된 곳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일 생각이다. 안산은 역사적으로 삼국시대 이전부터 국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그만큼이나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이 살아온 곳이고, 한반도에서 위치한 지리적 특징답게 각 나라들이 탐냈던 곳에 있다. 처음 안산이라는 지명을 알게 된 것은 대학에 오고 나서 같은 과 친구가 안산에 산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시골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나온 나는 대학에 가서야 안산 사람을 처음 만났던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안산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른 것은 신도시와 같은 이미지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어촌이라 부를만한 곳이었다. 경기도 1기 신도시들 보다도 먼저 개발이 시작된 곳이고, 사람이 살지 않는 미개발지도 아니었으니 신도시라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용어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안산이라는 지명에서 신도시를 떠올린다.
문학뿐 아니라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안산이라는 이름과 함께 어떤 예술대학교를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해당 학교를 다닌 것이 아니라면, 이름은 들어 보았지만 막상 가본 적은 없는 곳. 가깝다고 생각하면서도 멀다고 느끼는 곳. 외부에서는 이런 이미지들을 모아 안산에 대해 상상하지 않을까. 앞서 한 이야기는 나라는 개인의 어떤 지점에서 멈춰버린 선입견뿐일지도 모른다. 단지 여기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안산에 가본 적 없고 이름만 많이 들어온 익숙함에서 오는 어떤 지점이 있다. 그야말로 너무나도 낯선 그리고 익숙한 이름이다.
20년 전 룸메이트가 재즈 음악을 했는데 연남동에서 안산까지 통학을 했다. 10년 전에는 시를 쓰는 한 선배가 연남동보다 더 먼 거리에서 출강을 했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먼 곳이란 생각을 못했을까. 행북학교 강사를 구함에 있어 난항까지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먼 곳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여러 내부 기준에 맞춰 고민하던 중. 최근 『화해의 몸짓』이란 제목의 단편집을 출간한 장성욱 소설가가 가능할 것 같다고 답을 주어 강의를 부탁드리게 되었다.
물론 문학에 있어 이러한 이분법적 논리를 말하는 것이 적합하지는 않으나 남자 기획자가 남자 작가를 파견한다는 것에 고민이 있기도 했다.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책방 이름에 대해 조심성을 빙자한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방의 정체성과 별개로 우리 사업에 대한 정체성(청년 작가가 청년들을 만나 작가들의 청년 시절 작품을 읽는다.)을 우선했다. 하지만 이렇게 의식하게 되는 부분 또한 이 공간에 대해 멀고도 가까운 심정을 무의식적으로 지닌 것일지 모른다.
서점은 주택가 오래된 길가의 건물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의식하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을 것 같은 간판이었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익숙한 입구 여기에 들어간 사람들은 아마 모두 이와 비슷한 대사를 할 것이다. ‘내부가 더 크네요.’(It’s bigger on the inside, 영국 드라마 <닥터 후>에서 타디스에 처음 들어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대사) 상당히 큰 규모의 공간을 유지하고 있는 책방이었다. 내려가면 서가가 이어져 있고, 왼쪽으로 넓은 자리에 강의공간을 준비해 놓았다. 안쪽으로는 개인서가, 중고서적, 개인물픔 판매 등 다양한 용도의 서랍과 선반 그리고 책장이 이어져 있었다. 커피를 한 잔 구입했는데, 전문적인 카페 같은 시설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인테리어가 오히려 세련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책을 파는 곳이지만, 단지 책을 파는 곳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서로 소통하게 만들게 하고 싶은 바람이 구현된 장소. 이러한 공간은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가능했던 것은 ‘페미니스트책방 펨’이 조합형태의 공동운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개별적으로 수익을 바라는 투지가 아닌, 우리 사회와 사람을 위한 투자.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람들은 서로에게 힘을 주고 받는다. 차별과 배제, 폭력과 혐오,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묻고 성찰하고 연대하여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 모인 이들이 모여 소설 쓰기에 관심 갖고 소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렇게 소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좀 더 다른 이야기가 탄생하면 좋겠다. 좀 더 다른 이야기 또는 비슷한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하며, 다양한 소설들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펼쳐질 수 있길 기대한다.
행북학교와 같은 일시적 수업은 어쩌면 본격적인 문학 강의는 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문학을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 또는 잠시 정체기에 들어선 문학도들에게 그동안 익숙함을 익숙하지 않게 환기해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 없겠다. 그 과정에서 이후로도 문학의 길을 계속 걸은 사람이 훗날 이 수업을 기억해 준다면 더 바랄 것 없겠다.
이태형
소설가.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그랑기뇰』이 있다.
책방 펨(fe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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