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동체_두루미책방 – 정우신 시인
‘2022 청년 책의 해’ 행북학교는 사업에 참여할 대상 서점을 추첨으로 진행하였다. 지역서점은 총 네 군데가 선정되었는데 소설은 강원과 제주가 시는 충남과 경남이 되었다. 사실 시에도 제주가 한 군데 있었는데 서점 운영자의 개인 사정으로 사업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갑작스레 취소된 일정으로 인해, 서점에서 강의를 진행하려고 준비한 제주의 한 시인에게 이 글을 빌어 심심한 사과의 마음을 다시 보낸다. 서점에서 만날 청년들을 기대하며 커리큘럼을 상의하던 그의 설레던 목소리가 눈앞에 선하다. 지역서점과 지역서점을 둘러싼 사람들, 지역서점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예측하지 못한 사고로 인해 씁쓸했던 마음을 접어두고 방문한 지역은 충남 금산에 위치한 ‘두루미책방’이다. 주소지는 “충남 금산군 남이면 숲속마을길 7 희망귀농귀촌센터 1층”이다. 주소에 적혀 있듯이 ‘두루미책방’은 ‘귀농귀촌센터’이면서 마을 공동체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곳이었다. 1층은 서점과 문화공간으로 되어있다. 간단한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장비와 무대도 갖추어져 있다. 2층은 게스트하우스로 되어있다. 직접 내부를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밖에서 보면 아늑한 지붕과 창문, 그리고 전등이 책방 위에 포근히 놓여 있다.
‘두루미책방’은 청년들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고 있었다. 한 명의 사장이 운영하는 곳도 아니고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목적으로만 존재하는 서점이 아니었다. 우리의 신체 기관처럼 삶과 밀접하게 연동된 하나의 장소에 가까웠다. 청년들의 대부분은 이 지역 출신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모였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을 향해 ‘두루미책방’을 찾은 것이다. 또한 ‘두루미책방’에 모인 청년들은 근처의 대안학교를 졸업한 동기이기도 했다.
강사는 ‘두루미책방’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책방의 운영 방식과 그 소속 인원들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매주 출강할 때마다 긍정적 에너지를 얻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 보람을 느낀다고 하였다. 비록 교통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아 오래 걸리는 곳이지만 강의가 있는 날마다 기대가 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수업을 하면서 그런 기분을 가져본 지 오래되어서 ‘두루미책방’이 더욱 궁금해졌다. 훌륭하게 잘 진행되고 있는 장소에 가서 혹여 괜한 실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품고 모니터링을 떠났다.
충남 금산 하면 인삼이 생각났지만, 만해 한용운 시인이 절경을 두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 ‘태고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두루미책방’으로 향하던 길에 ‘태고사’에 잠시 들렸다. ‘태고사’입구에는 커다란 바위 위에 송시열이 쓴 ‘석문(石門)’ 이 붉은 글씨로 남아 있었다. 석문을 따라 계단을 오르니 과연 풍경이 예사롭지 않았다. ‘명승지란 바로 이런 곳이구나’ 하고 머리보다 몸으로 먼저 생각이 찾아왔다. 대웅전 앞에 서니 가까이는 구름 떼가 이마 주변을 빙빙 돌고 멀리는 산과 산이 만들어낸 곡선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 땅 위에 나만 우뚝 솟아있는 느낌인가 하면 동시에 무언가로부터 보호를 받듯이 감싼 기분이 들기도 했다. 원효스님이 이곳을 발견하고 “세세생생 도인이 끊기지 않으리라”라며 춤을 추었다고 하던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태고사’의 정기와 산맥을 따라 ‘두루미책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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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두루미책방’에 도착했을 땐 해가 지고 전구에 불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반겨주는 건 고양이들이었다. 왜 사랑스러운 곳에는 고양이가 늘 있을까? 고양이가 사랑스러운 것일까? 생각했다. 서점으로 들어가 청년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서가에는 환경, 페미니즘, 소수자 관련 책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이 고루 배치되어 있었다. 눈여겨 볼만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서점을 운영하고 사업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쓴 책들도 꽂혀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 많았다. 책이나 논문을 내는 것이 대안학교의 졸업요건이라고 하는데, 이미 작가가 된 그들의 삶이 빛나 보였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나는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을 선물 받았다.
강의는 다 같이 시를 읽고 함께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강사가 준비해온 시를 앉아있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읽었다. 보통 한 명이 읽거나 돌아가며 읽는데, 동시에 작품을 읽는 모습도 새로웠다. 글의 후반부로 갈수록 호흡과 속도가 일정해졌다. 다 함께 작품을 읽고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을 때, 어떤 공간감이 느껴졌다. 작품 속의 세계를 함께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무언가를 함께 경험한 기분이었다. 독립서점에서 하는 행사나 문학 관련 수업을 여러 번 가봤지만 이렇게 즐거움이 가득한 모임은 근래에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수강하는 청년들은 시를 접하면서 의견을 피력하고 메모를 적극적으로 하였다. 그 모습이 무척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서점 한 편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나는 그들과 함께 어울려 시와 삶에 대해 밤새 토론하고 싶었다. 그들은 직접 창작해온 시를 낭독하기도 하고 평소에 취미로 하는 음악이나 연극에 대해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여건만 된다면 ‘두루미책방’ 2층에 한달살이라도 하고 싶었다.
지역서점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까?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까? ‘두루미책방’은 적어도 몇 가지 모범 답안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지역성이라는 것은 이러한 청년들의 가치와 철학으로부터 확립되고 쌓여가는 것 같다. 트렌디한 서점이나 카페도 좋지만,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곳, 나이나 성별, 직업이나 학벌로 위계를 세우지 않는 곳,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곳, 그러니까 나의 생각을 언제든 자유롭게 말하고 들어줄 수 있는 장소가 도시에 사는 우리에겐 거의 없다.
정우신
시집 『비금속 소년』, 『홍콩 정원』이 있다.
두루미책방
두루미책방은 충남 금산군 남이면에 위치한 작은 동네책방입니다.
지역에 좋은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며 책을 기반으로 다양한 지역 문화 활동을 기획합니다.
지속가능한 지역살이의 실험의장이자, 사람과 사람사이를 모으고 잇고 엮는 소통의 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