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림책 명장면 50+] 70. 엄청난 눈 – 세상이 온통 새하얀 눈에 파묻힌다면


0세부터 100세까지, 모두가 읽고 즐기는 그림책 문화를 만들고자 ‘2025 그림책의 해 추진단’과 한겨레가 함께 ‘우리 그림책 명장면 50’을 기획해 연재해왔습니다.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우리 그림책 명장면 50+’라는 이름으로 명장면을 추가로 선정해 소개합니다.

눈앞이 온통 하얗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종이가 이토록 묵직한 존재감을 발휘하다니!

박현민의 ‘엄청난 눈’은 흰 종이 자체를 ‘눈’으로 치환하며 그림책의 물성을 서사의 핵심으로 끌어올린 역작이다. 건축과 공간을 연구하는 작가는 평면의 종이 위에 압도적인 수직의 세계를 설계한다. 책장을 위로 넘길 때마다 눈의 높이는 지붕을 넘고, 텍스트의 빈자리에는 눈 밟는 소리와 아이들의 숨소리가 채워진다. 삽과 불도저로 눈을 치우다 벌이는 눈싸움, 눈뭉치에 정통으로 맞아 얼굴이 사라지는 묘사는 어린이 특유의 유쾌한 놀이 감각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파랑과 노랑, 두가지 색만으로 생동감을 구현하며 책의 백미인 접지면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종이의 한계를 넘어서는 거대한 공간감을 경험한다. ‘2021 볼로냐 라가치상’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세련된 비움과 확장의 미학 때문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는 힘, 그것이 이 ‘엄청난’ 그림책이 지닌 고전의 품격이다.

강연주 구로기적의도서관 총괄팀장



우리 그림책 명장면 50+ [70]
엄청난 눈
박현민 글·그림, 달그림(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