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림책 명장면 50+] 63. 여행 가는 날 – 삶 너머, 할아버지의 찬란한 소풍길


우리 그림책 명장면 63. 삶 너머, 할아버지의 찬란한 소풍길

0세부터 100세까지, 모두가 읽고 즐기는 그림책 문화를 만들고자 ‘2025 그림책의 해 추진단’과 한겨레가 함께 ‘우리 그림책 명장면 50’을 기획해 연재해왔습니다.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우리 그림책 명장면 50+’라는 이름으로 명장면을 추가로 선정해 소개합니다.

어떤 책은 첫 문장을 읽기도 전에 색깔만으로 독자의 심장을 건드린다. 서영 작가의 ‘여행 가는 날’이 내미는 빛깔은 공포스러운 검은색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품어 안는 따스한 노란색이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떠나보내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죽음을 ‘마중 나가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림 속 할아버지는 일생 중 가장 단정한 모습으로 노란 대문을 열고 나선다. 집 안의 어둠은 이제 할아버지의 몫이 아니다. 문밖으로 쏟아지는 찬란한 빛과 발치에 모여든 작은 새들, 그리고 소리 없이 곁을 지키는 ‘손님’은 이 여행이 결코 쓸쓸한 고립이 아님을 증명한다. 저승사자를 ‘손님’이라 부르는 작가의 상상력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포를 삶의 마지막 예의로 바꾸어 놓았다. 아내를 만나러 가기 위해 정성껏 수염을 깎고 새 양복을 꺼내 입은 할아버지에게, 이 노란 문 너머의 세상은 두려운 미지가 아니라 그리운 이가 기다리는 눈부신 약속인 것이다.

할아버지는 ‘여행 가기 딱 좋은 날씨’라며 가벼운 발걸음을 뗀다. 이 간결한 문장 안에 담긴 생의 긍정은, 죽음이 비극이라는 공식을 무너뜨린다. 결국 이 노란 대문은 소멸의 문이 아니라, 그리운 이에게로 향하는 환대의 문이다. 생의 끝자락에서 이토록 단정하고 아름다운 여행을 꿈꿀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서영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다정한 위로가 아닐까 한다.

박현주 한국학교사서협회 교육국장



우리 그림책 명장면 50+  [62]

여행 가는 날 l 서영 글·그림, 위즈덤하우스(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