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그림책 명장면 27. 홀로 놀 줄 아는 할머니의 탄생
2025년은 그림책의 해입니다.
0세부터 100세까지, 모두를 위한 그림책.
누구나 그림책을 읽고 누리는 문화를 위하여 2025 그림책의 해 추진단과 한겨레신문은 <우리 그림책 명장면 50>을 공동 기획하여 연재합니다.
부드러운 파스텔 파도가 페이지를 넘어 밀려온다. 포말이 닿은 고운 모래 위에, 꽃무늬 수영복을 입은 할머니가 여름 휴가 중이다. 온몸으로 이 순간을 누리겠다는 듯, 땅으로 굽었던 몸을 뒤로 확 젖혀 바다를 바라본다. 바닷바람이 흰 머리칼을 날리고, 여름의 태양은 주름진 피부를 태운다. 파도와 갈매기들이 노래를 들려준다. 반려견 메리도 곁에 있다. 홀로도 온전히 즐겁다.
눈이 시원하게 탁 트인 이 장면은 복작복작한 동네 속 오래된 살림이 가득한 할머니의 집과 대비된다. 오래된 사진처럼, 수명이 다할 때까지 버텨주길 바라는 가전제품처럼, 과거의 ‘좋았던 때’에만 잡혀있지 않다. 지금을 생생하게 느끼며, 멀리 미지를 본다.
안녕달은 한국 그림책 세계에 새로운 할머니를 만들어냈다. 가족을 돌보고 양보하는 할머니, 지혜를 터득하고 초월한 할머니, 돌봐야 하는 할머니 등 관계 속에서만 존재가 드러나는 할머니가 아니다. 이 할머니는, 여느 어린이처럼, 살금살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서, 냄새 맡고 만지고 구경하고 친구를 사귄다. 즐거움을 유예하지 않고, 앞서 논다. 이 모든 게 상상이더라도. ‘수영복을 입기 부끄러운 몸’이란 없다. ‘이제 마무리니, 버텨주기만 하면 되는’ 삶의 단계란 더욱 없는 거다.
김은하 (책과교육연구소 대표)

우리 그림책 명장면 50 – 27
할머니의 여름휴가 | 안녕달 글, 그림 | 창비(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