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 돌아보기 – ⑤ 나를 마주하는 글쓰기


시즌 1 돌아보기 – ⑤ 나를 마주하는 글쓰기

어느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3살까지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14살이 되어 초등학교를 떠나면서 한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 노래는 영화 <국가대표>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었습니다. 졸업식이면 으레 떠오르는 노래가 아니어서 의아했지만,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부모들은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고 합니다.

겁내지 마 할 수 있어
뜨겁게 꿈틀거리는 날개를 펴
날아올라 세상 위로

영화 『국가대표』 OST 중에서

아이들은 졸업식을 통해 노래의 제목인 ‘나비’가 된 것입니다. 누에 속에서 예쁜 날개를 만들어, 그 날개로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노래의 가사는 아이들이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성장을 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졸업식에서 아이들의 그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죠.
모두가 날개를 만드는 과정을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누에 속에서 날개를 만들며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나비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나비는 누에를 가르고 나와 날개를 펼쳤을 때, 붙을 수 있는 이름이니까요. 하지만, 나비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날개를 갖기 위해서는 누에 속에서 꿈틀거리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그 과정은 아마도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좁고 어두울 테니까요.

영화  『국가대표』의 한장면

은유 작가는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자기 이해를 전문가에게 의탁하기보다 스스로 성찰하고 풀어가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며 그중 가장 손쉬운 하나가 내 생각에는 글쓰기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글쓰기는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공업으로, 부단한 연마가 필요하다.”고 덧붙입니다. 좁고 어두운 누에 속에서 날개를 만드는 것처럼, 나의 감각과 욕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서 나 자신을 글로 정의내리는 과정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는 날개가 생긴 ‘나비’가 되듯이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에는 인생을 마주하는 힘이 생긴다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나는 변했다. 끝내 몰랐으면 부끄러웠을, 무수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한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고맙고 귀한 시간을 살았다. 함께했던 학인들도 변했다. 눈빛, 표정, 발걸음, 사용하는 단어 같은 것들이 달라졌다.”
 
 
 은유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를 통해 얻게 되는 날개는 바로 “아픈 채로, 불편한 대로 안고 같이 살아갈 힘”인 것입니다. 그 힘으로 “삶이 다소 견딜 만해진 것”이지요.

 홍승은 작가는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를 통해 글을 쓰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전달합니다. 특히, 글을 쓰면서 오는 괴리감에 대해서 토로합니다.
 
    
“글을 쓰거나 말을 전달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공통의 감각은 왜 불가능한지, 나는 왜 듣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들어달라고 호소해야 하는지, 왜 한쪽의 절규를 다른 쪽은 가볍게 음소거 할 수 있는지, 그 권력의 차이는 무엇인지 한없이 묻다보면 어떤 답도 내리지 못해 주저앉곤 한다.”

 
글쓰기의 과정은 이처럼 정신적인 고통을 함께 수렴합니다. 그 고통을 끝까지 고스란히 끌어안고 가야 ‘퇴고’라는 종착역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홍승은 작가는 퇴고를 “초고를 쓰는 일이 드넓은 사막을 횡단하는 종류의 막막함이라면, 퇴고는 산처럼 쌓인 흙더미를 옮기기 위해 호미 한 자루를 쥐고 있는 종류의 막막함이다.”라고 그 고통을 표현합니다.

    
“쓰면 쓸수록 글은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쓴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고통이 결코 정신적인 데에 있지 않다고도 말합니다. 글쓰기는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괴롭히는 작업인 셈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는 글을 쓰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은 괴로운 만큼, 갖게 될 날개는 아름답겠지요. 그 날개를 달고 날아서 마주하게 될 다음 세상은 어떠할까요.

학창시절에 우리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되면 통과의례를 거쳤습니다. 졸업식을 통해 과거의 나를 끝내고, 입학식을 통해 미래의 나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학창시절이 끝나자 그런 의례도 사라졌지요.

그렇지만,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그 의례를 스스로 만들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며 지금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 정의는 땅에 떨어진 씨앗이 발아하듯 다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 힘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입니다.

<4050, 책에서 길을 묻다> 추진단 드림


▶ 시즌1_2강.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 (다시보기)

양현범

사계절출판사에서 책을 알리는 일을 하며,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에서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