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1 돌아보기 – ④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


시즌 1 돌아보기 – ④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화려한 봄날이 이어지고 있네요. 조금 있으면 무성한 녹음 사이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이 곧 오겠지요. 갈수록 봄이 짧아져 아쉬운 마음과 함께 일교차가 커서 감기나 알레르기도 유행인 만큼 여름이 빨리 다가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네요.

1강 <취향, 정체성이 되다>에 이어, 2강은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입니다. 여러분은 평소 글을 자주 쓰시나요? 매일 일기를 쓰거나, SNS에 자주 글을 올리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저는 SNS에 길지도 않은 글을 올릴 때마다, 수정을 반복합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제 글이 변변치 않다는 생각 때문에, 지인들이 내 문장을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앞섭니다. 사실 지금 쓰고 있는 지금도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글쓰기는 왜 어려울까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막 적으면 좋을 텐데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움이 앞섭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내 글이 이상하면 어떡하지? 다른 누구도 딴지를 걸지 않을 만한 글쓰기를 찾으면 글쓰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상대방에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 초점을 나에게 맞춰야 합니다.
 
 
“남들이 당신을 설명하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남들이 말하게 하지 마라.”

 – 마사 킨더
 
 
김민철 작가도 같은 이유로 매일 아침 일기를 쓴다고 하셨지요. 내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세상의 이런저런 요구에 휩쓸려 나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내게 초점을 맞춰도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면서 여러 글쓰기 수업을 들었습니다. 교수님마다 조금씩 방식이 다르지만 모든 수업이 결국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독특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시와 소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문단에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한 송기원 교수는 소설 합평 대신에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에게 편지 쓰기를 시켰습니다. A4 세 장 이상 써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붙었지만, 당시 단편소설의 분량이 A4 7장 내외였기에 대부분의 학생은 교수의 과제를 달가워했습니다.
 
노교수는 첫 수업에서 노벨문학상 후보에 3번이나 오른 미시마 유키오 작가의 대표작인 『금각사』의 주인공에게 편지를 써오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스스로 동경하던 금각사를 끝끝내 불태워버리는 주인공에게 편지를 쓰는 과제를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학생들은 컴플렉스로 가득찬 주인공에게 호기롭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지만, 이런저런 질문과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이런 방식으로는 분량을 채울 수 없음을 이내 깨닫습니다.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기 시작합니다. 결국 과제에서 <금각사>의 주인공은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자일 뿐, 편지는 학생의 살아온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스무 살 남짓한 인생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에 집중합니다.
 
발표자는 편지를 수업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나눠주고 낭독을 시작합니다. 편지를 담담히 읽는 학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하다 마지막에는 울음을 참지 못합니다. 낭독이 끝나면, 몇몇 학생이 발표자를 다독일 뿐 사위는 금새 조용해집니다. 그제서야 듣고만 있던 노교수는 제자에게 “네가 방금 말한 너의 상처는 네가 네 삶에서 건져 올린 보물이다”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진 너는 이미 작가다”라고 하며 수업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낸 노교수는 제자들에게 소설을 쓰는 것보다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는 것이 글쓰기의 지름길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글쓰기 수업에 오는 분들이 모두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것같이 보였지만 아프다는 내밀한 고백을 해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게 질병이기도 하고 병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고통이기도 했다. 다 개별적으로 아픈 거다.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고 한 건, 나의 아픔을 사회에 나가 말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좀 나아지니까. 치유가 된다기보다 아픔을 견딜 수 있게 된다는 ‘약간’의 믿음이 있다. 글 쓰면 다 좋아지는 것처럼 말하고 싶지 않다. 개인차가 있으니까.”

 – 은유 작가 인터뷰 중에서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자신의 상처를 부둥켜 안고 살아갑니다. 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숙한 곳에 자리합니다. 이 상처를 꺼내어 자신과 대면할 수 있을 때,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은유, 홍승은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조금 더 투명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4050, 책에서 길을 묻다> 추진단 드림


양현범

사계절출판사에서 책을 알리는 일을 하며,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에서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